호남정맥 제22~23구간 (피재~갑낭재~삼수마을까지)
<첫째 날> 피재에서 갑낭재/시목치/감나무재까지 . ...............언 제 ; 2012년 11월17일 (2~10도, 맑음) ...............누구와 : 김유영, 박찬익, 이정일, 임승규, 주성필, 허영심 (이상 6명) ...............산행시간 ; 6시간 40분 ...............휴식, 식사, 알바 ;
<06;00> 합정역 <06;30> 남부터미널 <08;50~09;05> 탄천휴게소 10;40 피재출발 11;08 좌 편백나무 11;10 편백나무 숲 11;30 봉 휴식 12;26 병무산/헬기장 12;35~13;00 헬기장에서 점심 13;09 헬기장 13;17 임도/좌 장평제산,주레기골/우 부산금자,관한마을 13;42 금장재/여의동마을 갈림길 14;10 용두산/무인감시카메라 14;14 헬기장 14;17 Y길(우) 14;28 편백나무 숲 14;51 고개/우측 가족묘에서 선두팀 약 30분 기다림 15;00 임도 6거리 15;11~15;20 부산만년고개,茶 16;20~16;30 224.9 봉에서 휴식 17;20 갑낭재 선두팀 도착 17;40 후미팀 도착 <18;00~19;30> 감나무재 관광농원 (전남 장흥군 장동면 하산리 15번지. 전화 862~2827 /2801번, HP.010-8641-9181 강해순) 식사 <20;00> 펜션 입실
[산 행 기]
새벽 6시 10분에 맞춤 떡을 찾아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모든 대원들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탄천휴게소에서 15분간 볼일을 보고 피재에 도착하니 10시 30분, 가로수 은행잎에 노랗게 떨어져 있다. 차내에서는 잘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체감 온도는 영하 3~4도는 될 듯 쌀쌀하다.
불과 한 달 사이에 綠色 山川은 온통 울긋불긋 떨어진 落葉地天이고, 새벽에 비가 온 탓인지 축축한 바닥에 구름도 갰다 꼈다를 반복한다. 햇볕도 들쑥날쑥하며 추운 날씨이고, 피재 들판의 찬바람은 더욱 거세다. 치열한 전쟁의 傷痕으로 피를 많이 흘렸다 하여 ‘피재’인지, 용이 피를 흘리며 이 재를 넘었다고 하여‘피재’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곳은 황량하기만 하다. 더구나 공사로 인하여 동물 이동통로를 바로 횡단하지 못하고 ‘싸리나무집’ 맞은편으로 거어 올라 본 정맥 길과 합류할 때까지는 길이 썩 좋은 편도 아니다.
그래서 인지 오늘은 進度가 예상보다 늦어진다. 1시간 남짓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병무산 정상을 1시간 40분이 넘는 12시 30분경에 도착하였으니 이미 허공주는 배고프다고 난리이고, 할매는 다친 발가락이 아직 성치 않아서 늦다고 맞장구를 친다. 병무산에서 7~8분후인 다음 헬기장에 이르니, 선두팀들이 기다리며 점심 먹을 채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는 길이 56㎞의 耽津江이 유유하다.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弓城山(484m)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장흥군 유치면 寶林寺앞을 지나면서 유로를 다시 남쪽으로 바꾼다. 有治川, 제비내, 錦江과 합류한 다음 강진읍 남쪽에서 남해 도암만으로 흘러든다.
耽羅의 사자가 신라에 조공을 바칠 때 배가 이 강 하구의 구십포(九十浦)에 머물렀다고 해서 탐라국의 ‘耽’자와 강진의 ‘津’자를 따서 ‘탐진’이라 하는데, 예양강(汭陽江) 또는 수녕천(遂寧川)이라고도 한다. 탐진강 유역으로 용반평야, 부산평야, 장흥평야, 강진평야가 있다.
탐진강은 영산강, 섬진강과 더불어 전남의 3대강으로 꼽힌다. 또한 탐진강 하구의 구십포에는 장어가 살기에 알맞은 수온과 수심으로 이루어져 장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절경도 잠시이고, 활동을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오싹오싹 추위가 느껴진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헬기장과 林道를 거쳐 금장재를 넘고 용두산 산불 무인감시초소까지 지났는데 앞 팀이 기다려 주지를 앉는다. 아마 어둡기 전에 하산할 목적으로 선두에서 속도 조절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걷는다. 쉬지 않고 2시간 정도는 걸었을까. 고개 길 양지바른 곳을 지날 즈음에야 선두팀이 기다리고 있다. 30분정도는 기다렸단다.
임도 6거리에서 만년고개를 넘어 쉬엄쉬엄 또 하나의 봉우리를 타고 오후 5시 20분에 匣囊재에 내려서니 서부장이 반갑게 맞는다. 산골의 시간은 더욱 빨라서 어둡기 직전이다. 승합차로 약 5분후 ‘감나무재 관광농원‘에서 옻닭, 약오리탕에 막걸리 소주 맥주를 곁들이는데, 주성필 님의 특별한 주문으로 닭고기회까지 처음으로 맛본다. 닭고기회는 호남지방에서만 먹어 볼 수 있는 전통 요리란다.
이곳 갑낭재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의 반산과 하산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 위에 감낭(감나무)이 있었으므로 감낭재라고도 하고, 원래는 보검출갑(寶劍出匣)의 형국이어서 匣囊峙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의 지형이 칼집에서 보검을 뽑는 형국이란 것인데, 어떻게 칼을 빼야 이런 형국이 나올까. 풍수쟁이들이 만든 얘기인가. 한편 갑낭재를 감낭재로 한 것은 갑낭재가 오랫동안 구전하면서 발음이 같고 친숙한 감낭(감나무)재로 변했으리라는 추측도 해본다.
토요일이면 이곳 장흥의 모텔들도 거의 빈방이 없단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눈치 빠른 서부장은 낮에 흥정하던 펜션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받아낸다. 감나무재 관광농원에서 15분정도 떨어진 위치이다.
펜션은 새로 지은 건물인데 어두운 밤에 보아도 경치가 무척 좋은 곳에 위치한 느낌이다. 동향집인데 방마다 병풍이 둘러져 있고 주방이 딸려있는 좌측 10여 평은 되는 큰방은 임승규, 박찬익, 주성필 님에게 배당되고, 그 다음 방은 7~8평쯤 되는데 여성 2명. 나는 요즘 감기기침으로 우측 골방격인 제일 적은 독방을 자처하여 콜록거리며, 첩첩산중의 계곡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밤을 지킨다.
<둘째 날> 갑낭재~제암산~일림산~삼수마을까지
...............언 제 ; 2012년 11월18일 (1~8도, 맑음) ...............누구와 : 김유영, 박찬익, 이정일, 임승규, 주성필, 허영심 (이상 6명) ...............산행시간 ; 9시간 30분 ...............휴식, 식사, 알바 ;
<05;00> 기상 <06;10> 식사 07;00 갑낭재 (감나무재/시목치) 출발 07;26 쉼터(388m)정자에서 일출 감상 07;34 송전탑 07;44 전망봉 07;50~08;30 작은산(685m) 전망 좋음 08;53 추모동판(물망비)/우회 길 위 09;05 전망대/소나무 (하산마을 3.42km, 병풍바위 0.5km) 09;13 등산로 안내판 09;14 휴양림(2km)삼거리 09;25~09;40 제암산(807m)/임금바위, 정상 표지석 09;52 돌탑 10;12~10;19 곰재/안부사거리 10;38 철쭉공원(627m) 10;47 철쭉평원/곰재산 10;59 간재/안부 사거리 11;20~11;40 사자산(668m) 12;00 휴양림 갈림길(일림산 4.4km)/쉼터 12;24~13;00 쉼터(의자)/점심 13;25~13;35 골치/쉼터 13;53 작은봉(600m) 13;37 쉼터/우측 ‘여기는 등산로가 아닙니다.’현수막 14;00 큰봉우리(623m) 14;08 삼거리/우 14;13~14;25 일림산(667.5m)/정상석/묘/동남 바다(전망 좋음) 14;29~14;34 봉수대삼거리/1대간 9정맥 최남단 지점 14;38~14;51 쉼터/지도 14;55 발원지 사거리 15;12 표지석(용추폭포 주차장 2.7km, 15;29 매남골 갈림길 15;42 회령삼거리 표지석 15;58 413봉 공터/ 알바주의/ 좌측으로 급 내리막 (길 좋지 않음) 16;30 삼수마을 표지석
[산 행 기]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바깥에서 기척이 나기에 눈을 떠 보니 5시 35분이다. 깜짝 놀라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배터리가 소진되어서 꺼져있는 것이 아닌가. 부랴부랴 준비를 끝내고 승합차에 오르니 그래도 꼴찌는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마음 놓고 주위를 살펴본다. 새벽녘 실안개가 계곡을 감싸면서, 半裸의 山川境界도 점점 기지개를 켜며 모습을 들어낸다.
6시가 조금 넘어 ‘감나무재 관광농원’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도 깔끔하고 먹음직스럽다. 50대 중반(58년 개띠)인 여주인은 손님에게 부담도 주지 않고, 귀찮은 내색도 없다. 성의껏 대해 주는 모습을 보고 ‘장사는 저렇게 하는 거야.’ 나름대로 한 마디씩........
아침 7시에 어김없이 갑낭재를 출발한다. 잘 다듬어진 오르막 등산로에는 지난밤에 내린 서리가 겹쳐 미끄럽고 쌀쌀하다. 출발 25분, 첫 번째 쉼터인 388m봉 정자에 닿으니 동쪽 하늘에서 눈부신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른다. 일출 감상은 언제 보아도 가슴 벅차고 새롭다. 특히 山頂에서 느끼는 日出은 더욱 그러하다.
송전탑을 지나고 전망봉을 넘어 685m의 작은산 정상, 앞뒤 좌우의 전망과 제암산의 위용을 감상하며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40분을 기다린다. 8시 30분, 가야할 등산로를 바라보니 능선길은 장엄하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조금 가다가 危險路 구간, 우회 길 밧줄을 따르지 않고 직진하여 岩壁 위에 올라서니 빛바랜 추모 동판 한 기가 새겨져 있어 어느 산 사나이의 영혼을 달랜다.
물망비에는 1936년생이고, 1995년 10월 1일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아 당시 59세 이었나 보다. ‘님은 생전에 무척도 산을 좋아하시더니 끝내 이곳에서 산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1995년 10월 29일 -동부고속 호남정맥 산우회 일동-
군데군데의 전망대와 쉼터, 등산 안내도를 따라 쉬엄쉬엄 9시 25쯤에 帝巖山 정상에 선다. 제암산은 정상에 임금제 ‘帝’자 모양의 바위가 우뚝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807m의 높이에 祈雨祭를 지내는 神靈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봄철의 철쭉과 여름의 계곡 물놀이, 가을의 억새꽃, 겨울이면 설화가 장관을 이루는 유명산으로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직 우리들뿐이다.
柱狀節理 암반이 무등산처럼 웅장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오묘한 자태를 자랑한다. 내려다보이는 능선 좌우를 따라 시선 맞닿은 곳에 사자산, 일림산까지의 가는 길이 뚜렷하게 뻗혀있어 가슴까지 후련하다. 임승규 님과 정상 標識石에 올라 멋진 포즈를 취하는데, 파란 하늘에서 햇볕도 덩달아 내리 쬐어 암반에 부딪친다.
정상석 아래 허공주는 빨리 내려와 간식 사과를 먹으라고 소리치는데, 듣는 둥 마는 둥 정상 絶境에 취하여 대답도 않고, 배고픈 줄도 모른다. 기다리다 지친 주성필 님과 박찬익, 허공주가 저만치 앞서갈 즈음에야 정상에서 내려와 걸음을 재촉한다. 돌탑을 지나면서부터는 철쭉평원이 서서히 펼쳐지더니 곰재를 넘어서고 부터는 완전 철쭉강산을 이룬다.
곰재산, 간재를 넘어 산능성이를 걷노라니 엎드린 사자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 사자의 머리가 두봉(560m)이라면, 두봉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성이 사자의 허리이고, 정상 남능이 사자의 꼬리로서, 獅子仰天型 모양이 된다. 사자가 도약하는 형상이란 것이다.
한라산 신록을 연상하는 봄이면 진분홍 철쭉이 地天이고, 여름이면 산등성이가 짙푸른 초원으로 덮었다가, 가을이면 억새꽃이 휘날리는 壯觀을 이룬단다. 특히 흰 눈이 쌓인 겨울에는 산등성이를 쓸쓸히 걸어가는 한 마리 사자 같은 인상을 주는 산. 철따라 색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668m의 사자산이다. 쉼터에 둘러 앉아 자연을 만끽하고, 식당 아줌마가 싸준 인절미도 맛있게 먹는다. 金剛山도 食後景이라는 데, 먹는 즐거움도 이만하면 더 무엇이 부러우랴.
사자산을 내려와 봉 두어 개를 넘어 내리막 고개에 닿으니 쉼터가 나타난다. 시간도 12시 반이 가까워 오기에 의자에 앉아 오순도순 점심도시락을 풀어 제친다. 흰밥과 찰밥에 반찬도 풍족하고 양도 넘친다. 손도 큰 아줌마의 인심을 느끼며, 식사를 막 끝낼 무렵이다.
웬 사나이 한 사람이 묻는 대답에 시큰둥 반응하며 바쁘게 우리들을 지나친다. 순간 갑자기 작란기가 발동된다. 날씨도 약간 옴 추려 드는데, 몸도 덥힐 겸 속으로 잘됐다 생각하며 그를 따라 붙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부산서 왔습니다. 우린 호남정맥을 끝냈는데 저는 빠진 구간을 채우러 왔습니다.’ ‘오르막이니까 좀 천천히 갑시다.’ ‘아, 제가 오르막은 좀 센 편입니다.’]
센 편이란 바람에 그만 심통이 났다.<아 그래, 그러면 제가 얼마나 빨리 가나 보자>하고 바짝 따라 붙는다. 그리고 불과 얼마가지 않아 그가 비틀거린다. 나도 죽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더욱 바짝 따라 붙는다. 숨이 터질 것만 같고 등에서 땀이 솟구친다. 마침내 그가 두 번째 비틀거린다. 숨소리도 거칠게 내 품는다. 내가 괜한 작란을 건 것 같기도 하고, 그도 죽을 지경인 듯 하다. 더디어 560봉쯤 되는 정상에 도착한다. 이윽고 그는 스마트 폰을 꺼내 무슨 지점을 찾는다며 우물쭈물 뒤로 쳐진다. 나는 이 찬스를 놓칠세라 앞으로 쭉 내 뺀다. 얼마를 앞서 가는데도 따라오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골치고개’이다. 좌측으로는 용추폭포와 휴양림 가는 쪽이다. 쉼터 벤치에 앉아 조금 있다니까 그가 온다. [‘자, 인연 있으면 언제 또 산에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잘 가요.’] 이렇게 한 바탕 심통으로 소동을 치르고 나니 괜히 나만 죽을 지경인 것 같고, 온 몸은 땀투성이 범벅이다.
작은봉, 큰봉우리를 지나 또 다른 정상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오후 4시가 넘어 일림산 정상에 오르니, 동남은 전부가 탁 터인 남해 바다이다. 높이 667.5m인 일림산은 호남정맥의 제암산(779m)과 사자산(666m)을 거쳐 남해로 들어가기 직전에 솟은 산이다. 가을이면 8부 능선쯤에 형성된 산죽밭과 정상 부근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르는 곳, 이곳 정상에 어느 자손이 묘를 써 놓기도 했다. 과연 명당일까.
또한 북서쪽인 사자산에서 제암산을 비롯해 장흥군 천관산(723m)과 멀리 무등산(1,187)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남동쪽 아래로는 득량만에서 율포해수욕장이 손에 잡힐 듯 와 닿는다. 해안도로와 보성만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곳에는 옥황상제의 세 황비가 내려와서 놀았다는 ‘삼비산(三妃山)`설화가 간직된 곳이기도 한다. 황비가 내려왔다 해서 `천비산(天妃山)`이요,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황비가 놀았다는 `천비산(泉妃山)`이며, 늘 신비로운 안개로 뒤덮인다고 해서 `현무산(玄舞山)`이라고도 부른다.
장흥과 보성의 이곳 경계에서 철쭉제가 열린 이 후에는 산이 너무 유명세를 타자 두 지역의 갈등이 벌어졌다. 그 후 2006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일림산으로 지명을 고시하여 양 지역의 중재를 했나 보다. 일림산 정상부에 있는 30만평 규모의 철쭉 경관과 산 밑에는 일림사의 사찰이 있다.
일림산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할 능성길이 그림처럼 선명하다. 정상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봉수대 삼거리, 1대간 9정맥의 최남단 지점이다. 봉수대는 우측으로 3.1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여기서 다시 5분 후에 쉼터 양지 바른 곳에 일찍 도착하여 낮잠을 청하려는데, 허공주에게서 주성필 님을 통하여 전화가 왔다. ‘봉수대 쪽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 붙잡는 기술이려니 하며 보성강 발원지를 지나 이름없는 봉을 서 너 번 오르내리다가 413봉 공터에서 좌측으로 급 하산한다. 지금까지는 길이 좋았는데 지금부터는 길도 거칠고 특히 대나무 숲길에서는 대나무가 넘어져 서로 엉키는 바람에 길도 찾을 수 없어 헤맨다. 허둥지둥 겨우 길을 찾아 삼수마을에 내려서니 오후 4시 30분, 오늘 산행 총 9시간 30분의 장정을 마무리 한다.
서울까지 가려면 5시간을 감안해야 된다. 부지런히 율포해수욕장으로 달려 ‘해돋이 횟집’에 여장을 풀고 연포탕, 전어무침, 00구이를 시키고 술을 겸한다. 회에 대한 지식이 없는 박찬익 님과 나는 시켜주는대로 따르고, 할매는 그냥 손자의 재롱 사진에 정신 팔려 무관심이다. 7사람인 데 1인당 3만원 꼴이면 비싸지 않은 걸까. |
| 허영심 | 이번 산행에서는 억새와 진달래, 제비꽃, 며느리밥풀꽃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 있어서 봄과 가을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지요. 대장님의 심통 산행기 잘 봤습니다. (2012-11-28 오전 10:3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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