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2-27 오후 5:08:38 |  | 제 목 | 호남정맥 제24~25구간 (삼수마을~오도재~주릿재까지) |  | 호남정맥 제24~25구간 (삼수마을~오도재~주릿재까지)
<첫째 날> 삼수마을에서 오도재까지 . ...............언 제 ; 2012년 12월15일 (2~10도, 안개) ...............누구와 : 박찬익, 이정일, 임승규, 전형기, 주성필, 허영심, 홍사룡 (이상 7명) ...............산행시간 ; 8시간 00분 ...............휴식, 식사, 알바 ;
<06;00> 합정역 <06;40> 남부터미널 <08;50~09;05> 관촌휴게소(전북 임실) 11;00 삼수마을 출발 11;07 삼수정/우 11;15 왕피고개/마루금으로 진입 11;44 활성산 갈릴길/우 12;30~12;40 봇재~대한다원~고속도로 지하도 통과~정맥길 복귀 12;52 제일다원 앞 13;15 313m봉/점심 14;29~12;50 봉화산/봉수대 15;34 풍치재 임도 15;39 통신탑 15;50~16;20 그럭재/기러기재 16;43 325봉/삼각점 16;49 소룡고개/시멘트임도 17;05 대룡산 삼거리/우 17;36 346봉/삼각점 19;00 오도재 도착 <19;30~21;00> 식사/ 대성식당(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442~17.T.062-853-7168) <21;30> 득량면 예당 마을회관에서 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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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까지만 해도 -12도까지 내려갔던 매서운 추위가 어제는 영상으로 돌아오면서 저녁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주섬주섬 1박 2일간의 필요한 물건을 배낭에 챙기고, 약속 장소인 ‘김밥세상’에 도착하니 벌써 승합차까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팀에 합류하기로 한 부길만 교수가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되지 않는다. 웬일일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록 연락두절이다. 하는 수 없이 6시 40분에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나서야 전화가 걸려온다.
금방 일어난 듯한 부스시한 목소리로 오늘 약속을 순간적으로 깜박 잊어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과한다. 얼마 전에 나도 점심약속을 같은 시간에 두 군데를 해놓고 A장소로 가는 도중에 B장소의 전화를 받고서야 A장소의 약속을 깜박 잊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 탓?, 건망증?, 침해?
엊저녁 내린 비 때문인지 오늘의 고속도로는 자욱한 안개 속, 차량의 속력조차 제 대로 내지 못한다. 전라북도 임실 쯤 지날 때의 산과 들에는 하얀 눈까지 녹지 않고 그대로이다. 8시 50분, 관촌휴게소에 잠시 볼일을 보고, 달리는 차안에서 따끈따끈한 베지밀을 국물삼아 김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10시 50분에 출발지인 삼수마을에 내린다. 삼수마을이란 마을 뒷산 형국이 방아를 찧어 하얀 쌀을 쌓아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糖山이라고 하는데, 좌청룡이 糠嶝(강등)이고, 우백호가 방앗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안산은 筆峰과 露積峰이다. 대대로 문장가와 부자가 나올 터란다. 이 마을엔 飛來泉, 寒泉, 通泉(비래 샘, 한 샘, 통 샘)의 세 샘이 있다고 하여 三水 또는 삼수마을이라 하는 곳이다. 이 三水는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한다는 데 낮은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발원지라니? 얼른 이해가 안된다.
아스팔트를 따라 쭈~욱 삼수정 우측으로 꺾어 왕피고개에 와서야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약 15분 정도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니까 누군가가 한마디, ‘이런 길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승용차를 이용 할 걸!’. 마루금 능성길도 비포장도로처럼 잘 정리하여 차가 들어 갈수 있을 정도이다. 안개 때문에 절경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300m를 전후 한 산봉우리 서 너 봉을 넘는다.
활성산 갈림길이다. 좌측이 활성산 가는 길이고,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봇재를 갈수 있다. 말로만 듣던 녹차 밭을 지나 봇재에 내려섰는데, 노견과 도로의 중앙 분리대 때문에 무단 횡단을 할 수도 없다. 좌측 ‘대한다원’ 쪽으로 가서 지하도로로 횡단하는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 지하도를 통과하여 공사장 우측으로 빠져 정맥길에 원대 복귀 한 뒤 ‘제일다원’ 앞을 지나 313봉에서 점심 김밥을 먹고 나니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따라 안개속을 헤치고 468m의 봉화산 봉수대에 오르니 보성군수가 2000년도 새아침에 새겨 놓은 ‘새 천년의 햇살, 보성에서 빛나리’의 돌비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왜구의 침입이나 국란이 있을 때 불이나 연기를 피웠던 봉수대는 근래에 새로 복원하여 말끔히 단장하였다. 지금은 보성군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성화를 채화한다든가, 가뭄 때는 기우제를 올리는 성스러운 산이다. 여기서부터 그럭재까지는 4.7km 남았는데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을까?
결국은 임승규 님이 걸음을 죄는 바람에 1시간이 못되어 그럭재에 도착한다. ‘그럭재’란 앞산과 뒷산의 형태가 기러기 모양이라 하여 雁雉 또는 기러기재로 불렸던 고개였는데, 그럭재라고 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기러기 울음소리가 ‘그럭그럭’하는 소리에서 따온 이름?, 아니면 고개를 넘다보면 ‘그럭저럭’ 다 올라 왔다는 걸까? 우리도 그럭저럭 이곳에서 오후 4시를 넘긴다. 여기서 오도재까지는 아직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을 예상하고, 발길을 내 딛는다.
그럭재에서 도로를 횡단하여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된다. 325봉의 삼각점을 지나고 6분후에 산꼭대기 ‘소룡고개’에 닿는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1시간 쯤 걸릴까? 우측 득량만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그냥 걷는다. 대룡산 정t상은 정맥 길에서 살짝 좌측으로 비켜 앉아 있다. 다행이다. 삼거리 우측으로 하산하는 듯 하드니 봉 두 서 너개를 다시 오르면서 저녁 6시 30분을 넘긴다. 완전 어둠이다. 전등을 켰으나 산중 숲속의 어둠은 칠흑이고 시그널조차 떼어내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긴가민가하며 동물적 감각으로 오도재에 도착하니 저녁 7시, 그래도 허공주는 ‘시간이 아직 이것 밖에 안됬네’ 하며 여유를 부린다.
득량면 예당은 면(?)단위의 소도시이다. 그래서 인지 내일 새벽 6시에 아침식사까지 해 줄 식당 찾기가 쉽지 않다. 돌아다니다가 오늘 영업을 마감하려는 ‘대성식당’이란 곳을 겨우 만나 사정을 하여 내일 아침 식사 예약과 오늘 저녁식사를 겨우 해결한다. 이제 잠자리 걱정이다. 모텔이 한 군데 있기는 한데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저녁 9시를 넘겨 이 마을 里長님을 찾아 잠을 깨운다. 서부장이 낮에 마을회관을 빌리기 위하여 약간의 상담까지 하였다든 里長님이다. 시골의 밤 9시는 꾀 오래된 야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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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도재~주월산~고흥지맥~주릿재까지 . ...............언 제 ; 2012년 12월15일 (3~10도, 맑음) ...............누구와 : 박찬익, 이정일, 임승규, 전형기, 주성필, 허영심, 홍사룡 (이상 7명) ...............산행시간 ; 8시간 10분 ...............휴식, 식사, 알바 ;
<05;00~05;45> 기상/예당마을회관 출발 <06;10~06;40> 대성식당/아침식사 06;50 오도재 출발 07;12~07;17 국사봉(355.5m)/좌 07;43 파청재 임도 08;05~08;10 호동재/약수터 사거리 08;20~08;30 방장산(535.5m)/중게소 옥상/쉼터 09;13 배거리재 09;23~09;46 주월산(557m)정상석/활공장 쉼터 09;48 임도 10;15 무남이재 10;43 광대코 삼거리/우 10;45~11;15 광대코봉/간식 11;35 삼각점 11;40 고흥지맥 분기점/길주의/좌 11;45 임도/잠시 좌측으로 진행 후 산길로 11;55~12;20 모암재/점심(전형기 님은 장흥의 선산 성묘) 12;25 동물이동통로 통과 후 송전탑 12;50 존제산 12;55~13;22 군부대 철조망 통과 후 폐 막사 앞에서 휴식 14;30 도로를 진행하다가 좌측 산길로 14;40 다시 도로에 합류 14;50~15;00 선두/후미 주릿재 도착 <15;20~16;30> 외서댁 꼬막나라(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653~7. T.061-8583330) <16;40> 벌교 출발 <20;30~21;20> 서울 양재동에서 종 파티
마을회관에서 오랜만에 합숙을 하고, 어김없이 5시 기상, 6시에 대성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오도재에 도착하니 7시 10분 전이다. 오도재란 방장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산세가 다섯 마리의 돼지가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오도치 또는 오돗재라고 한다는데, 글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이고 또 렌턴을 켜고 가기 때문에 우리만 느끼지 못하는 걸까. 10여분 후에 렌턴을 끄고 국사봉 첫 봉에 선다. 방장산 중계소가 눈앞에 와 닿고 우측으로는 득량만 일대의 경관이 멋지게 펼쳐진다.
득량만 동쪽에는 順天灣이 있고, 맞은편 서쪽에 寶城灣이 있다. 본래는 장흥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지금의 보성만이 전체를 아우르는 만이었다. 그러나 寶城灣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면서 得粮島의 지명에 따라 득량만(得粮灣)이 생겨났다. 득량만 주변 해안 일대에는 방조제가 구축되어 潮水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양식에 적합하여 김과 굴 생산이 적합하다. 맞은편 豆原面에는 물이 맑고 수심이 얕은 風流海水浴場도 있단다.
파청재 아스팔트길을 질러 535.9m의 방장산 방송국 송신탑에 이른다. 이곳엔 派靑이란 마을 이 있는데, 이는 보살들에 사찰을 건립할 때 빈대가 많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마을이 폐할 것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썩 기분 좋은 이름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방장산 정상에 오르면 바둑판처럼 펼쳐지는 예당의 간척 평야는 하늘과 맞닿아 있고, 덕산 저수지의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방장(方丈)이란 원래 사방이 1장(丈=약3m)이 되는 넓이의 방을 뜻한다. 불교 용어로서는 법력이나 도력이 뛰어난 승려를 뜻하고 주지나 스승의 의미를 갖고 있다. 승려의 참선 도량인 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律院까지를 다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 한다. 우리나라 曹溪宗에는 5대 叢林이 있고, 叢林에는 方丈이 있다. 그런데 왜 이 산이 方丈山(535.9m)이며 또 무슨 연유일까?
앞으로 쫙- 뻗어나간 능성이가 한 눈에 다가오고 날씨, 경관, 시야는 막힘이 없다. 배거리재를 지나 舟越山(558m) 정상에 선다. 그런데 배거리란 배를 이곳에 걸어 놓았다는 뜻이고, 舟越山이란 배가 이곳을 넘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곳이 먼 옛날에 바다였다는 걸까. 백두대간 제2.3구간 때였던가. 舟村, 노치(櫓;물을 헤쳐 배를 나아가게 하는 기구)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지명으로 보아 그곳도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남쪽이 바다였다는 건가. 휘둘러보는 山河는 막힘이 없고, 날씨조차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데 공연한 생각은 끝이 없다. 산봉우리를 활공장으로 잘 다듬어 놓았고, 이곳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산 꾼들도 만나 서로가 가야할 목적지의 정보도 교환한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예정된 시간대대로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 무남이재에서 가파르게 치고 올라 광대코삼거리에서 우측 봉우리에 선다.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점심으로 지참한 빵과 두유를 훔쳐 먹으며 悠悠自適 경관에 빠져든다. 11시를 넘기면서 출발, 삼각점을 지나고 11시 40분에 고흥지맥 분기점에 닿는다. 알바 조심지역이다.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고흥지맥은 이곳 571.1봉에서 분기하여 동남진 한다. 봉두산, 천봉산을 지나면서 좌측에 팔영산을 떨구고 유랑산, 유무산, 천등산, 유주산을 지나 지죽도를 바라보며 남해바다에 그 여맥을 가라앉히는 약 9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우린 이곳에서 좌측을 내려간다.
잠시 임도를 따르는 듯 했는데, 정맥 길은 금방 숲길로 들어서면서 12시를 넘긴다. 모암재이다. 그런데, 이번엔 박찬익 님이 보이지를 않는다. 틀림없이 고흥지맥 분기점에서 알바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구호를 보내도 반응이 없고 전화를 걸어도 불통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느긋한 표정들이다. 잠시 후 후미와 함께 나타난 박찬익 님, 역시 고흥지맥 분기점에서 무심코 직진하여 알바를 했단다.
이곳에서 전형기 님은 고향 성묘 차 장흥으로 출발하고 우린 다시 동물 이동통로를 통하여 존제산을 가파르게 오른다. 중턱 조금 지났을까. 우연히도 이번에는 박연 사장을 만난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데, 앞으론 그가 우리 출판인산악회로 나와 호남정맥을 함께 하겠다니, 박연 사장님 감사합니다.
존제산 704m는 지뢰지대를 시작으로 철조망까지 통과해야 한다. 벌교의 진산 尊帝山(703.8m)은 고려 충렬왕이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남쪽 장흥땅의 帝岩山(778.5m)을 향하여 존경의 뜻으로 읊조린 산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이후인 1967년에 이곳 정상부에 군부대를 창설한 후 2005년 12월 9일까지 40년간이나 영호남 영공을 지키는 ‘벌교포대’였다. 억센 철조망을 통과하는 데는 무조건 조심조심하는게 상책이다. 폐막사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부인 존제산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조정래는 존제산과 연관지어 ‘그만 그만한 높이의 산들이 줄기를 뻗고 그 줄기들이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원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그건 산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강강술래 춤이거나 어떤 성스러운 것들을 받들어 올리고자 하는 산들의 어깨 동무였다.’고 노래한다.
여기서부터 주릿재까지는 긴 아스팔트길이다. 한 시간 남짓으로 계산한 게 잘못이다. 선두가 오후 2시 50분, 후미가 3시였으니 알바 10분을 합쳐 8시간 10분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역시 주릿재는 태백산맥 조정래의 시비와 함께 있다. 주릿재는 마치 줄을 꼬아 놓은 것처럼 구부러져 있어 주렛재, 혹은 주릿재로 불렸단다. 이곳 팔각정자에서 서부장이 미리 준비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 키고, 벌교 읍내의 유명한 ‘외서댁 꼬막나라’로 출발한다. 꼬막정식에 막걸리 소주 맥주에 후한 인심까지 이곳에서 2012년도 호남정맥 종파티 한다.
상경하는 승합차 안, 유달리 이곳에는 불교와 연관된 이름이 많을까. 갓바위 윗등에 염주를 목에 건 불상의 바위부처가 하나님과 만나던 곳을 天峙라 하고, 죽으면 한 줌의 흙이 된다는 뜻의 진토재, 이 모두가 동쪽에 있었던 신라 고찰인 징광사와 관련된 지명들일까.
이래저래 서울 양재동에 밤 10시 전에 도착하였으니 그냥 바로 집으로 갈수 없지 않은가. 다시 생맥주 한 잔으로 진짜 종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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