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호남정맥 제26~27구간 (주릿재~고동재~접치까지)

2013.02.23 Views 86 慶 雲


등록날짜   2013-02-26 오전 11:42:50
제 목   호남정맥 제26~27구간 (주릿재~고동재~접치까지)
호남정맥 제26~27구간 (주릿재~고동재~접치까지)


<첫째 날> 주릿재에서 고동재까지

...............언 제 ; 2013년 2월16일 (서울 영하 6도 반짝 추위, 낮엔 영상, 맑고 약간 구름)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전형기, 조은상, 허영심, 홍사룡 (8명)
...............산행시간 ; 7시간 20분(알바 포함)
...............휴식, 식사, 알바 ; 50분

<06;30> 합정역
<06;50> 남부터미널
<08;45~09;00> 임실 ‘관촌휴게소’ 휴식
11;00 주릿재를 출발 10분 후 부터 알바, 11;45분 우측으로 하산하여 도로 따라 복귀
12;10~12;20 2차선 도로/철계단 아래 복귀 (약 50분간 알바)
12;40~13;07 485.5m봉/삼각점
13;15 임도
14;05~14;15 석거리재/휴게소
14;40 채석장 경계따라
15;20~15;37 백이산(582.0m) 정상/정상석/전망 좋음
16;15~16;20 빈계재
16;55~17;10 전망 좋은 곳에서 휴식
17;37 511.2m봉/삼각점
18;00 고동재(치)/좌 장안마을 3.7km, 우 수정마을 2.1km, 수정마을쪽으로 하산
<18;50~20;30> 쌍암식당(순천시 낙안민속촌 농협 뒤편) 저녁
<20;40> ‘읍성민박’에서 취침

최근 2~3일 동안은 영상의 날씨를 보이며 비교적 포근하였는데, 오늘따라 영하(-) 6도까지 내려가는 반짝 추위이다. 그러나 낮부터는 영상의 기온을 되찾는다니 기대해 본다. 오늘 호남정맥에 처음으로 합류하는 박종관, 부길만 님, 그러나 열성 회원 임승규, 주성필, 김유영 님이 사정상 불참하여 아쉽게 되었다.

오늘 참여 일행 총8명은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아침 9시가 못되어 임실 ‘관촌휴게소’에서 15분간 볼일을 보고, 따끈따끈한 두유와 함께 달리는 차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음지쪽 비탈진 산 중턱엔 잔설이 하얗게 쌓여있고, 바깥 공기는 아직 차디차다.

오전 11시가 되었는데도 주릿재 아스팔트위에 부는 싸늘한 바람은 볼때기를 따갑게 때리고, 조정래의 시비 앞에는 하얀 눈보라까지 일면서 사람 접근을 꺼린다. 10분 후, 작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주릿재의 도로는 역시 꼬불꼬불 줄을 꼬아 놓기라도 한 듯 겹겹한 산허리를 돌고 꼬며 보였다간 살아진다.

그런데 봉우리 우측에 붉은 시그널 하나가 붙어 있어 묘지 쪽 가는 길인 듯 지나고, 잘 다듬어진 좌측 산길을 따라 별 의심 없이 모두들 무심히 따라간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산악회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펼치고 아무리 봐도 알바이다. 급히 우측 아래 길을 따라 다시 2차선 도로에 내려서서 철계단 아래에 복귀하고 보니 50분 정도는 알바를 했다. 초보자가 선두를 서더니만 결국은 탈을 내고 말았다. 그러나 대간이나 정맥 길은 알바도 하나의 묘미인 것을!

본격 정맥 길에 들면서 가파른 봉우리를 넘고 석거리재를 지나 채석장 경계선을 따라 582m의 백이산 정상에 서니 호남들녘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왜 伯夷山일까. 우리 선조들은 지조의 상징이라면 백이숙제를 떠 올리는데, 伯夷叔齊는 은나라가 망하자 수양산 기슭에 들어가 주나라 곡식을 거부하고 고사리만 먹고 살다가 끝내는 주나라 고사리마저 거부하고 굶어 죽었다는 의인을 말한다. 그래서 이곳에도 고사리가 많이 나서 백이산으로 부른 걸까. 아무튼 순천 지방의 풍부한 산하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모두들 자연을 만끽하며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빈계재로 향한다.

요즘 허공주가 너무 바쁘단다. 특히 어제 저녁에는 잠을 전혀 못자서 참여를 망설이기도 하였는데 차마 총무 책임감에 참여는 하였으나 사실 너무 힘들어 하고 있는듯 하다. 입술이 부르트고 진땀을 흘린다. 근성의 허공주인데 오늘은 할 수 없이 중도 하산을 종용하며 빈계재에서 승차를 권유한다. 대신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챙기도록 부탁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2시간 예상의 빈계재를 출발한다. 오후 4시 20분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든지 고동치까지 6시 정도에 도착하여야 한다. 이 시간대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걷는 대는 전부 이골이 난 대원들이다. 탁 터인 능성이를 넘어 전망 좋은 곳에서 한차례 휴식을 취하고, 고동치에 도착하니 예정된 6시,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러나 오른쪽 수정마을 까지는 2.1km 시멘트 길이다. 7시간 등산을 하고 난 후의 시멘트 길은 지겹고 무릎 관절에도 좋지 않은 것. 수정마을에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에 도착할 때는 6시 30분이 넘는다.

허공주가 미리 예약한 ‘쌍암식당’에서 꼬막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읍성민박’에 도착하여 잠자리를 편다.

그런데 방 하나를 추가하여 조은상 님과 나에게 배려를 하는데, 좀처럼 방이 따뜻해지지 않아 오돌오돌 떨면서 잠을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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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고동재에서 접치까지

...............언 제 ; 2013년 2월17일 (순천 4도, 맑고 오후에 비)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전형기, 조은상, 허영심, 홍사룡 (8명)
...............산행시간 ; 5시간 20분
...............휴식, 식사, 알바 ; 00분

07;00 고동재 출발
07;20~07;30 고동산(709.5m) 정상/이동 통신 탑/조망 멋짐
08;00~08;15 휴식
08;20 송전탑
08;43 700.8m봉/삼각점
08;52 705m봉/산불감시 초소
09;00~09;10 오치오재길,장안치/임도횡단(좌 장안마을, 우 남강마을)
09;18~09;40 큰굴목재(좌 송광사 4.2km, 우 선암사 2.3km, 직 작은 굴목재 1.0km)
09;54 작은 굴목재
10;10~10;26 조계산 배바위(전망 좋음)
10;35~10;50 조계산(000km)/장군봉 정상석/돌탑
11;00~11;11 장박골 정상(우), 접치 2.7km
12;00~12;20 접치 도착 (선두/후미)
<13;00~13;30> 송광사 관람
<14;20~15;10> 선암사 입구 ‘길상식당(순천 승주읍 죽학리 763-1)’에서 점심
<15;30~14;00> 선암사 관람
<16;00~16;30> 전통 한옥펜션 ‘은하수(김정애)’에서 고로쇠 물마시며 다음 숙소 예약?


냉장고 같은 차가운 방에 드러눕자니 냉기가 뼈 속으로 스며오고, 외풍도 심해 콧등까지 시려 온다. 옆 조은상 회장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치락뒤치락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비몽사몽 알람이 울리기에 억지로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이제야 방바닥이 따뜻해 졌는데 벌써 기상이라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새벽 6시, 엊저녁 식사를 했던 ‘쌍암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서부장 승합차에 올라 고동치 고개에 내려서니 아침 7시, 날씨도 훤히 밝아 오는 상쾌한 아침이다. 그러나 오늘 오후에는 비 예보가 있어서인지 구름이 잔뜩 끼어 일출은 감상하지 못한다. 신작로 같이 탁 트인 오르막 능성이, 마른 갈대숲을 헤쳐 가며 고동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동통신탑이 우뚝하다.

高東山(709.4m)은 산고동이 울고 나면 눈이나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임진왜란 전에는 산고동이 그렇게 울었다고도 전해진다. 날씨가 예상보다 쌀쌀하여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아침 7시 30분에 이곳을 출발한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조계산을 바라보며 송전탑을 지나고 700m고지의 봉우리 서 너 개를 넘어 장안치 넘어 선다.

이곳 산 능성의 나무들은 지난여름에 있었던 태풍에 온통 부러지고 쓰러지고 넘어져 마치 장애물 경기를 연상하게 한다. 허공주는 마냥 짧은 다리를 한탄한다. 긴 다리였으면 단번에 성큼성큼 넘을 텐데 짧은 다리여서 이렇게 고생을 두 배로 한다며 웅얼댄다.

드디어 오늘의 중간 지점인 큰굴목재이다. 표지목에는 좌측으로 천년고찰 송광사가 4.2km이고, 우측으로는 선암사가 2.3km, 직진하면 작은굴목재 1.0km지점이다. 오래 머물고 싶어도 날씨가 쌀쌀하여 서둘러 출발한다.

그리고 15분 후 작은굴목재, 조계산 장군봉도 이제 0.8km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보리밥 집’이 얼마나 유명하면 이정표지목에 새겨 넣었을까. 10시 10분 조계산 배바위 전망대로 올라가 사방을 조망하며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니 마음까지 넉넉하다.

오늘의 메인 조계산 정상, 11시도 되지 않은 순조로운 산행이다.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아늑하고 884.3m의 높지 않은 산이면서도 조망과 경관이 기가 막힌다. 모두들 장군봉 표지석을 둘러싸고 사진 찍기 경쟁이라도 하듯 법석이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이다.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조계산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단다.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한 송광사, 조계종(曹溪宗)의 중흥 도장(道場)으로 삼으면서 불교문화의 요람이라는 뜻에서 조계산(曹溪山)으로 바뀐 것이리라.

또한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 종단의 5개의 총림과, 태고종 종단의 1개를 합하여 총6개의 총림이 있다. 조계종 5개는 영축총림(양산 통도사), 해인총림(합천 해인사), 조계총림(순천 송광사), 덕숭총림(예산 수덕사), 고불총림(장성 백양사)이고, 태고 종단의 1개 총림이 조계산의 선암사이다. 이처럼 송광사(조계종)와 선암사(태고종)의 2개의 총림을 품은 조계산이 진정 불국토(佛國土)가 아닐까.

이곳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경관 또한 으뜸이다. 좌우 능선 따라 소장군봉(우측), 연산봉(좌측), 조계산의 광활함이 발아래에 펼쳐진다. 송광사와 선암사의 유명세 탓일까, 등산객들도 제법이다.

조계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접치로 향하는 북쪽 길은 잔설에 얼음길이다. 모두들 아이젠을 착용하고 10여분 후에 장박골 정상에서 우측으로 길을 튼다. 내리막 길 2.7km만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접치이다. 그러나 여기서 부터는 길도 급하고 완전 빙판이다. 접치에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일행들도 제법 많고, 눈앞에는 접치 고개를 통과하는 남해 고속도로가 손에 잡힐 듯 와 닿는다.

장박골 정상에서 1시간은 꽉 채우고서야 접치에 닿는다. 선두 12시, 후미가 12시 20분에 도착한다. 그러나 넉넉하게 쉴 틈도 없이 곧바로 계획된 탐방에 나선다.

오후 1시, 송광사에 이른다. 먼저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단다.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탄생하여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사를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았단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불렀다고 한다.

세번째는 일찍부터 이곳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뫼`라고 불렀는데,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다. 그러나 결국을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뀐 샘이다.

30분간의 관람을 마치고 다시 승차, 선암사 앞 ‘길상식당’에서 산채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에 오르는데 지금까지 참았던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것도 주차관리인에게 주지스님을 뵈러 왔다며 정중히 얘기하고는 차를 절 앞까지 올라갈 수 있는 편리를 보았다.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뒤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단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고,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다가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또한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가치도 크다.

특히 선암사는 자연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40여 곳의 전각들이 자유로운 듯 넓게 자리한 것이며, 대사찰이면서도 계곡을 따라 그 속으로 터를 잡은 사찰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마치 계곡의 일부인 듯 착각하며 쏟아지는 계곡 물줄기를 따라 삼성당을 찾는다.

불가의 땅이 시작됨을 알리듯 계곡을 가로지르는 승선교와 강선루 아래의 법고의 크기며, 대웅전 앞 삼층석탑을 보니 진정한 부처님의 세상인 듯 하다.

나는 선암사 입구로 다시 돌아와 지나가는 낯선 신도(?)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작업을 하는데, 박찬익 님은 400년이나 된 해우소를 관람하고 왔다며 자랑을 한다. 국문학 전공과는 역시 관람 수준을이 다르다는 것을 통감한다. 시인 정호승 이 선암사의 해우소를 노래하였던가. 아마도 화장실을 노래한 문학작품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우린 사진을 찍어주던 인심 좋은 낯선 신도(?)의 집으로 초대 받는다. 서울에서 살다가 낙향한 분이라는데, 넉살 좋게도 우린 정성스럽게 지은 펜션 아랫목을 차지하며 호기를 부리다가 고로쇠 2컵씩을 얻어 마시고 오후4시 30분에 상경을 서둔다. 차창 밖에는 차가운 겨울비가 본격적으로 내린다.
  
박찬익고문님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2013-03-23 오전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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