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한남정맥 제7구간 (47국도변 군포보건소~버들치고개까지)

2011.10.11 Views 81 산나그네

한남정맥 제7구간 (47국도,군포보건소~버들치고개까지)

......................동행한 대원들 ; 김호중, 박연, 이정일, 임순재, 채호기, 최태경, 천승배, 허영심 8명
......................날짜 ; 2011년 10월 8일(맑음)
......................산행시간 ; 8시간 10분
......................휴식 및 점심시간 ; 2시간 15분


08;30 당정역 / 박연, 이정일, 임순재, 천승배 4명은 집합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한다. 이번 한남정맥은 지난달 제6회 때 하산지점인 군포보건소에서부터 한세대학교 앞까지는 도시개발로 인하여 그 개념과 의미는 물론, 보람도 미미하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여 군포보건소 앞에서 출발지점(군포보건소)을 찍고, 다시 回車하여 종가집 앞에서 부터 출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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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47번 국도변 군포보건소 앞 주유소 / 택시를 이용하여 지난달 하산지점인 주유소 앞에 내려 사진을 ‘찍는다.’ 약속 시간인 9시에 당정역에 도착 한 대원들을 종가집 앞으로 이동하도록 急傳

09;20~09;30 한세대학교 근처 ‘종가집’ / 군포 택시기사라면 쌈밥집으로 유명세를 탄 종가집을 모르는 이가 없단다. 이제 실제 정맥산행에 들어가기 전에 총 인원 점검과 출발준비를 끝내고,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우측으로 난 농로(?)를 따라 입산을 시작하여 10여분 후에 길옆에 위치한 고인돌을 만나게 된다.

09;40~09;45 고인돌 / ‘고인돌’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얕지만 205.4m의 오봉산을 향해 오르는 중간 묘3기 옆을 통과하게 된다.

09;48 묘3기 / 묘3기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한다. 본 한남정맥코스는 오봉산 정상을 살짝 비켜 이곳에서 우측 나무숲으로 들어섰다가 내리막 능선 길에서 다시 아스팔트 국도의 삼거리 고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선두에서 그만 이곳을 무심코 지나친다. 잠간이지만 오늘의 첫 번째 알바이다. 그러나 오봉산 정상에 오르면 서북방향의 백운산과 광교산 전망이 일품이라는데 아쉽기도 하다.

10;00 ‘이동고개 삼거리’ (지도상에는 ‘고고리고개’ 또는 이동고개로 표기) / 건너편 대각선 쪽 철탑에 노란 리본 하나가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10;20 ‘들고지길’에 내려서서 ‘누리길’을 따르다가 토종 밤나무 단지를 통과하는데. 너도 나도 떨어진 알밤을 줍느라 진행이 되지 않는다.

10;50~11;00 고속도로 지하통로 통과 / 어느 길이 고속도로이고 어떤 길이 국도인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분간하기 힘들다. 국도를 건너 도로를 따라 길을 묻고 또 물어가며 지지대 고개에 이르니 우측 건너편으로 정조대왕의 효행을 기린 ‘지지대 비’를 만난다. 지지대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24호이다.

11;20~12;30 ‘지지대비’를 지나 ‘지지대 쉼터’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느긋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마침 ‘정조대왕의 능 행차’인 문화 축제가 있는 날이다. placard가 여기저기 걸려있고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한다. 군부대, 다문화 가정, 시민 참여단 등 2400여명이 참여하는 문화 행사로서 1996년도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 최대의 가두 퍼레이드이다. 수많은 장비와 소품, 의상이 소요되는 이 축제는 세계속에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축제로 자리매김 했다는 데 우리들은 시간에 쫓겨 이를 관람하지 못하여 아쉽기도 하다.

지지대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능 현륭원(顯隆園;장헌세자의 능)에 전배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서 멀리서나마 아버지 능이 있는 화산을 바라볼 수 있기에 이곳에 행차를 멈추게 하고, 현륭원 쪽을 뒤 돌아 보면서 떠나기를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조가 이곳에서 행차를 느릿느릿하게 하였다 고 하여, 이곳의 이름을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

장헌세자란 흔히 알고 있는 사도세자. 10세에 혜경궁 홍씨와 혼인, 어려서부터 타고난 총명으로 학문에 열중하였다. 세자가 어린 시절에는 소론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워 10세 때 신임사화(辛壬士禍)에 대한 노론들의 잘못을 비판함으로써 일찍부터 노론에게 미움을 살만한 빌미를 주었다. 그 후 1749년(영조 25) 장헌세자가 15세가 되던 해 영조의 명을 받고 서정(庶政)을 대리하였다.

그러자 노론에서는 세자가 영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여기에 세자의 장인인 洪鳳漢의 세력이 또한 날로 커진다면 자기들의 입지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와 함께 그의 잘못을 영조에게 과대 포장하여 무고하는 등 세자의 지위를 끓임 없이 끌어내리고자 하였다. 1762년에는 金漢耈와 洪啓禧, 尹汲등이 尹汲의 종 羅慶彦을 사주하여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영조에 올린다.

영조는 세자를 불러 조목조목 다그치고, 마침내 세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그러나 세자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굶어죽는다.

세자가 죽은 뒤 영조는 다시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1777년(정조 1)에 사도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올라 사도를 장헌(莊獻)으로 추존한다. 사당(廟)을 景慕宮이라 하고,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던 묘(墓)영우원(永祐園)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친다. 그 후 정조는 자주 능행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효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1899년(광무 3)에는 장헌을 장조(莊祖)로 추존하고, 현륭원도 융릉(隆陵)이라 다시 고쳐 부른다.
12;30 지지대고개 출발 / 자하 통로를 지나 백운산을 향하여 진입한다. 솔숲을 걸을때면 더욱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이다.

13;30 통신 헬기장 (1) / 첫 번째 헬기장을 그대로 통과

12;45 산마루 이정표 / 지지대 1.0km, 광교헬기장 1.8km, 통신대헬기장 3.3km지점이다.

13;10~13;30 광교산 헬기장을 100m쯤 지나 봉우리 솔숲 쉼터이다. 등산객 한 분이 의자에 걸터앉아 즉석 라면에 물을 부으며, 젓가락을 건넨다. 정중히 사양하고 일행 모두를 기다렸다 다시 출발

13;50 통신대 헬기장 / 우측 좁은 계단 길을 따라 오르는데, 할머니 한분이 힘겨운 산행을 하신다. 어차피 인생은 산행과 같은 것, 힘들고 지겹고, 외로우며, 오르고 내리고, 좁고 먼길을.......

14;08~14;10 567m의 백운산 통과 / 전망을 기대하고 열심히 왔지만 군 통신대 시설 때문에 기대는 엉망이다. 광교산 정상도 이젠 손에 잡힐 듯 오르막은 이제 거의 없어 보인다.

14;18~14;20 억새밭 / 어느 정도까지는 그래도 억새밭 분위기가 날줄로 알았는데 100평도 될 듯 말 듯 한 곳에 이름만 억새밭이라고 이구동성

14;30~14;55 노루목 / 전에는 대피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철거를 했나보다.

15;05 시루봉(광교산 정상) / 수원의 진산인 582m의 광교산, 일명 시루봉이라고 하는 광교산은 원래 광악산이었다가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명명된 산으로 알고 있다. 능선이 매우 완만하고 사방의 경관이 뛰어나며, 특히 광교적설이라고 하여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나무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치가 일품이라는 것. 즉, 겨울 절경을 이르는 말로서 수원 8경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우리들은 잠시 들렸다가 우측으로 비켜 내려선다.

15;20 토끼재 / 무심코 지나치기 심상이다.

15;30 비로봉(종루봉) / 팔각정자 아래에는 ‘광교산이라 부른다.’ 란 시문이 오가는 등산객을 맞는다. 잠시 시름을 놓고, 큰 소리를 내어 읽어 본다.

“눈을 감아라.
회색같은 삶과는 달리
푸르름이 보이지 않는가?

귀를 열어라.
세상의 시끄러운 모든 소음과는 달리
맑은 음이 들리지 않은가?

두 팔을 벌려라.
답답한 세상에서 움츠러든 내 육체 속에
그 무언가 탁 트이지 않은가?

때론 날지 못하는 새처럼
음을 내지 못하는 악기처럼
삶에 지친 자신을 보았는가?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는 듯한
어디선가 맑은 음이 들리는 듯한
세상에 낙오되어 지쳐있던 내가

어느새 새처럼 나는 듯한 산
사람들은 이곳을 광교라 부른다.”

그리고, 종루봉을 내려서면 김준용 전승비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만난다. 안내판을 따라 좌측으로 70m쯤 거리의 천연암벽에는 “忠襄公金俊龍戰勝地”라는 글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병자호란 때 청태종의 사위인 양고리(楊古利)의 목을 벤 김준용(金俊龍;1586-1642) 장군의 전승을 기린 곳이다.

15;35 양지재 / 울창한 숲에 가려 양지보다는 음지 고개이다.

15;55~16;15 형제봉 / 사방을 전망하며 서로의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16;28 백년수 정상 / 우측으로 내려가면 백년수 약수터가 있는데, 우리는 곧바로 직진

16;35~16;45 새천년 약수터 / 왼편으로 세 줄기 파이프에서 약수가 힘차게 흐르는데, 음용수로 마시기에는 ‘부적당’하단다. 그러나 갈증해소에는 어쩔 수없이 단숨에 물 한바가지를 들이킨다.

16;51 송전탑 1.을 지나고, 3~4분에 송전탑 2.를 지나게 된다.

17;10 버들치고개 도착 / 인심 좋아 보이는 ‘대한민국 식당’(031-263-2336번)에서 갈증해소를 위해 막걸리 세병을 마신 후, 근래(10월5일)에 운행을 개시하였다는 1570번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양재동에서 하차하여 영동 족발집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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