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한남정맥
한남정맥 제8구간 (버들치고개~아차지고개까지)
2011.11.08 Views 74 산나그네
한남정맥 제8구간(버들치고개~아차지고개까지)
.................등산날짜 ; 2011년 11월 5일(맑음)
.................동행인 ; 김호중, 박선진, 이석희, 이정일, 주성필, 채호기, 천승배 (이상 7명)
.................총 산행시간 ; 6시간 20분-2시간 40분=3시간 50분
.................휴식, 식사, 알바, 차량승차 ; 2시간 40분
08;10 양재역 출발 / 이석희 대원을 기다리는데 30분 간격의 1570번이 도착한다. 약속시간도 넘었으니까 모두들 이 버스에 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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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버들치고개 출발 / 8시 43분에 도착하여 이석희 대원을 기다렸다가 모두가 함께 출발
09;25 군 철조망(좌측으로 진행해야 되는데, 우리 일행은 우측 정상으로 향한다.) 오늘은 어차피 산다운 산도 별로 없고, 정맥 길의 의미도 적어 조금이라도 높고 먼 길을 택하는 것도 괜찮을듯하여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09;50~10;10 군부대 철조망 끝 / 이곳에서 좌측으로 군철조망을 끼고 돌아 내려서니 고속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어차피 고속도로를 건너야 한다면 횡단보도도 찾기 어려울 텐데 군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직진하면 터널 위를 횡단하게 된다. 이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다시 되돌아와서 직진한다.
10;30~10;40 청송 심씨 조상 묘 /
10;45~10;50 택시
10;55~11;15 심곡서원 / 1972년에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서원이다. 1650년(효종 1)에 조광조(趙光祖)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의 공론으로 설립하여 위패를 모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우리들은 흔히 기묘사화와 관련해서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술수로 모함당한 조광조로 알고 있기에 한번쯤은 문화 탐방 삼아 방문하고픈 서원이었다.
15세기 후반에 훈구세력에 의한 권력형 비리가 여러 곳에서 문제화되었을 때, 사림세력은 이러한 훈구 세력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권력형 비리를 문제시하면서 새로운 조선 사회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당대 사림세력은 조광조를 영수로 하여 대부분 젊은이로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을 실현하기에만 급급한 결과, 너무도 과격하고 급진적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 자기네들과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훈척 세력(남곤이나 심정 등)을 소인이라 지목하여 그들과의 사이에 알력과 반목이 빈번했다. 1519년 조광조 등은 마침내 자기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다름 아닌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의 제거였다. 이른바 위훈 삭제운동으로서, 중종반정의 공신 중 공신 작호가 부당하게 부여된 76명에 대한 공훈을 삭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공신세력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공신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목을 겨누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결국은 공신세력들의 반격을 받아 화를 당하게 되니, 이른바 기묘사화이다.
여기에 당시에도 지금처럼 지동(地動), 즉 지진이 자주 발생하였나보다. 이때 조광조의 반대 측에 있던 남곤과 심정 등은 권세 있는 신하가 나라 일을 제 마음대로 하고 장차 모반을 일으키려 하기 때문에, 그 징조로 지진이 발생하였다고 중종에게 간언한다. 그 뒤에도 연거푸 말을 만들어 퍼뜨리며, 민심이 점차 조광조에게 돌아간다고 여론을 호도하게 된다.
또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가지 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을 꿀로 써서 그것을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천연적으로 생긴 양 꾸미어 궁인으로 하여금 왕에게 고하도록 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走肖’는 ‘趙’자의 파획(破劃)이다.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을 암시한 것으로서, 조광조 및 사림세력을 발탁했던 중종의 마음을 돌리려는 술책이다. 급기야 남곤,심정,홍경주 등이 밤중에 갑자기 대궐로 들어가 왕에게 아뢴다. 조광조의 무리가 모반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중종은 이들의 말을 믿고, 조광조 이하 여러 사람을 하옥하였다가 모두 지방으로 귀양 보낸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남곤,심정 등의 주청으로 이들 조광조 이하 70여 명을 모두 사약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이때에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한다.
너무나 날카롭고 급진적이었던 개혁가 조광조에 대하여 율곡 이이는 다음과 같이 개혁 실패의 원인을 지적하였다.
‘조광조의 학문이 숙성되지 않았다는 점, 너무 급진적이었다는 점,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제시하였다고 하니, 이 같은 지적은 오늘에 와서도 여전한 것은 아닐까?
11;15~11;25 5번 마을버스를 타고 ‘한국수자원공사’까지 승차
11;40 소현중학교 정문
11;55~12;35 기흥구 보정동 성호APT 앞 ‘전경희 비빔 잔치국수 집(T. 031-264~6923)`에서 설렁탕과 불백으로 점심
12;40 한진교통 옆,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일명 개구멍, 택시도 다니기 힘들 듯 좁은 도로)통과
13;05 23번 국도 우측에 ‘여성능력개발원’ 정문
13;10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통과
13;18~13;33 신릉근린공원 8각정 / 새천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정자이다. 예비 신랑 신부인 듯한 연인이 가을 정취에 빠져 속삭이는데 우리가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천회장님은 연신 이들에게 먹을 것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부러우신 건가, 아니면 옛 추억을 회상하는 걸까.
13;45 언남초등학교 옆 동산 / 영동고속도로 남쪽 야산을 밟는다. 오늘 비가 오리라든 예보는 빗나가고 구름 틈으로 비추는 한낮의 가을 햇살은 더없이 눈부시다.
14;00 두산아파트 / 아스팔트길은 누구도 걷기 싫어 하나보다. 오늘 선두에 선 채호기 교수가 본 정맥길은 아마도 이 아파트단지를 돌아가야 될 듯 하다며 말로만 얘기하고 정작 본인은 지름길인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선다. 모두가 뒤따른다.
14;10~14;20 두산아파트 단지 내 210동 앞 / 아니나 다를까, 이 아파트는 주민의 키가 없으면 철조망 울타리문을 열지 못하여 빠져나가지 못한단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한 할아버지에게 부탁 (109동에 사시는 집에 가서 키를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림)하여 문을 열고 겨우 아파트단지 내를 탈출한다.
14;40~14;55 무년산 운동시설 / 턱걸이, 허리운동 등, 오늘은 모처럼만에 한가한 정맥산행을 즐긴다.
15;00~15.05 금령김씨 가족묘가 나타나자마자 좌측으로 꺾는다. / 자칫하면 길을 놓치기 쉬운 곳이다. 리키다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노란 낙엽을 밟는다. 한적한 산길이다.
15;15~15;25 군 철조망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며 고도를 낮춘다. 역시 낙엽이 쌓인 길이다.
15;30 아차지고개(후미기준)를 내려서니 우측에는 어성가구단지 / ‘수상한 가게’슈퍼에서 막걸리파티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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