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한남정맥
한남정맥 제11구간 (57번 도로~가현치까지)
2012.02.14 Views 89 산나그네
한남정맥 제11구간 (57번 도로, 구 장수농원~가현치까지)
............같이한 사람들 ; 박연, 이정일, 주성필, 채호기, 천승배, 홍사룡 (이상 6명)
............산행 날짜 ; 2012년 2월 11일 (서울 영하 9도, 낮 최고 기온 1도)
............총 산행시간 ; 5시간 40분 중 4시간 30분
............휴식, 알바, 식사시간 ; 1시간 10분
08;00 합정역
08;20 남부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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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57번 도로(구 장수농원 표지석)
09;22 연안김씨 합동제단
09;55 원삼제일교회 입간판
10;05 무궁화위성 안테나 담장
10;18 굴다리 통과
10;30~11;00 길 찾느라고 알바
11;00 극동기상연구소 정문 앞
11;25~11;30 무명봉, 정자에서 차 한 잔 (좌측으로 두창저수지)
12;05 폐 휴게소 (우측으로 태광CC)
12;11 바위 옆 의자 (두창리 안골마을 가는 길)
12;30~13;00 구봉산 정상(465.1m)에서 점심
13;12 달기봉 갈림 길
13;35~13;40 달기봉
13;50 안부, 황새울 방향으로 직진
13;55 체력 단련장
14;00 246번 철탑
14;20~14;35 천주교 안성추모공원 위로
15;00 가현치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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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MBC세트장에 같다가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되돌아 나옴
16;40~17;20 미리내성지 문화 탐방
18;00~19;20 아우네병천순대 집에서 저녁
20;20~21;20 남부터미널에서 2차로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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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영하 9도까지 떨어지고, 낮 최고 기온도 영하 1도까지 밖에 오르지 않은 매서운 일기예보이다. 눈길과 추위 때문인지 오늘은 지난달에 비해서 참여인원이 적다. 특히 여성 대원들이 한명도 참석하지 않은 예는 모처럼 만의 일이다.
9시 10분,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출발지에 도착하여 목수건을 두르고, 털모자를 눌러 귀까지 덮은 다음 두툼한 장갑을 낀다. 57번 지방도로는 아직 아침이어서 인지 아스팔트 위로 찬바람이 윙윙거린다. 폐 농원이 된 ‘장수농원 標識石’은 썰렁하기 짝이 없고, 정해진 정맥 길 위에는 흰 눈이 살짝 덮여 있다. 차라리 산이라기보다 한적하고 나지막한 뒷동산 길이다. 때로는 밭길로, 언덕으로, 모퉁이를 돌고 돌아 출발 1시간 10여분 만에 두창리에 도착한다.
‘기상삼거리’에 도착해서는 좌측으로 가야 되는지, 우측으로 가야 되는 지 분간이 안 된다. 제각기 흩어져 정상 길을 찾아 나선다. 나는 직진을 하여 산 중턱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정맥 길을 표시한 리본이 없다. 할수없이 신호를 하여 흩어진 대원들을 다시 하산시켜 두창사거리에서 전부 만난다. 지나가는 인적도 없어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우왕좌왕 하다 보니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극동기상연구소 앞을 겨우 찾았을 때가 막 11시이다. 이렇게 알바를 하고도 예상 시간대보다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모처럼만에 전체 산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는 豫感이 든다.
극동기상연구소 건너편으로 난 산길은 인적이 전혀 없는 눈길이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내가 간 발자국이 뒤따라오는 이의 里程標가 되나니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金九 선생께서 무척 좋아 하셨다는 西山大師의 글이 생각난다. 앞 선 러셀(russel) 대원이 내 놓은 발자국을 따르자니 步幅이 맞지 않고, 이를 무시하고 새로 러셀을 하며 걷자니 더욱 힘이 든다. 사회 지도층은 물론, 등산에서도 先登者들의 역할을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구절 같다.
11시 25분, 그럭저럭 무명 亭子峰에 올라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마음까지 녹아 한결 푸근하다.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두창저수지가 꽁꽁 얼어붙은 체 하얗게 누어있고, 그 얼음판 위로 낚시꾼들만 이따금 오간다.
이어진 능선따라 九峰山 가는 길은 한가롭고 쾌적하다. 운동시설이 있는 無名峰을 지나고 고개에 내려서니 불탄 廢家와 두어 채의 흐무러진 집이 나온다. 어느 누구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산하고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른쪽 아래의 태광CC와 연결된 고개인 듯하다.
12시20분, 석술암산 갈림길에 올라서니 韻致도 있고, 숲도 우거진 絶景이 펼쳐진다. 先頭의 채호기 시인도 ‘정말 산이 멋있다’며 한마디 거든다. 서너 봉을 지나 465.1m의 九峰山 頂上, 현대식 쉼터에 마루까지 놓여 있고, 음각으로 새겨 놓은 標識石은 오래되지 않은 듯 깔끔하다. 바람도 잔잔하고 햇볕도 포근하여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30분간의 점심시간을 끝내고 달기봉(413m)을 지난다. 그리고 우람한 246번 철탑 밑을 빠져나오니 수십만 평의 넓은 능선을 깎아 만든 共同墓地가 나타난다. 묘지 위로 난 길을 돌면서 이렇게 큰 규모의 공동묘지를 처음보는 것 같다.
묘지도 평등하지 못하다. 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이는 아파트에 살고, 어떤 이는 개인주택이고, 저택, 초가집, 음지, 양지 등 각양각색의 墓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래도 죽어서 까지 돈이 있어야 明堂으로 가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간 중심의 평등이라는 장례문화와는 거리가 잇어 보안다. 내려와 묘지 입구에서 있는 看板을 확인하니 천주교 ‘안성추모공원’이다.
오늘은 느긋하게 7시간 예정 등산 시간을 5시간 40분으로 단축하고, 오후 3시에 가현치 고개에 도착한다. 모처럼만에 널널한 시간을 갖고 文化 探訪을 나서기로 한다. 스타렉스 승합차에 올라 30여분을 달려 MBC드라마 촬영 세트장을 찾았다. 달기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세트장이 그럴듯하여 찾아 왔는데, 썰렁한 출입구에서 퉁명스런 경비원의 왈, 1인당 7천원씩 9명의 입장권을 사서 오란다.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 ‘MBC의 날g도들’이라고,
그로부터 40여분을 달려 이번에는 ‘미리내성지’를 찾았다. 해가 떨어지면서 날씨가 더욱 차갑고 바람조차 싸늘해 졌다. 남들은 일부러라도 이곳 聖地를 찾아오는데, 어차피 서울로 가는 길, 조금만 거치면 되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가 安葬된 유서 깊은 성지이기에 한번 쯤 그의 一代記를 보고 싶었던 곳이다.
‘미리내’란 辛酉(1801년), 己亥(1839년)때 天主敎 박해에 못 이겨 信者들이 이곳에 숨어들어와 옹기를 굽고, 火田을 일구며 살았는데, 이때 달빛아래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라고 불렀단다. ‘미리내’란 ‘은하수’의 우리말이라고 한다.
김대근 신부는 1846년 한강 새남터에서 殉敎하였다. 이때 몇몇 信者들이 屍身을 몰래 거두어 우리 산악회가 지난달에 넘어온 望德고개를 거쳐 이곳에 安葬한 곳이다. 대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종아리뼈와 고문 형구가 있고, 屍身을 몰래 지고 도망 온 이민식 신부의 묘와 순교자 103위의 시성, 16위의 무명 순교자들이 잠든 묘역이다. 날씨도 쌀쌀하고 바람도 차서 대충 관람하고 출입구로 나오니 이미 어둑어둑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다.
오늘은, 용인 아우네 병천순대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평상시 보다 이른듯하다. ‘이렇게 일찍 짐에 가서 뭘 하겠느냐(?)’는 熱火에 다시 2차 생맥주집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