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한북정맥
제2기,한북정맥 마지막 제12구간(솔고개~숫돌고개~장명산까지)완주 (작성자 : 산나리)
2013.05.29 Views 107 피아트
한북정맥 마지막 제12구간 (솔고개~숫돌고개~장명산까지)
.............. 언 제 ; 2013년 5월 4일 (맑음, 낮 최고 25도 정도)
.............. 누구와:박종관, 부길만, 이병덕, 이정일, 전형기, 조은상, 주성필, 천승배(8명),
...............축하 동행 회원 ; 허창성, 오상환, 박찬익, 김경회 등 4명, 총 12명
...............산행시간 ; 정맥코스 9시간 10분(솔고개에서 숫돌고개까지는 6시간)
...............휴식, 식사 ; 시간 분
<08;00> 구파발역
08;30 솔고개(1905부대 앞) 출발
08;44 919봉 입구/좌
09;03~09;06 319봉(군부대 철조망)/우
09;13 부대후문, 청룡사 0.4km지점/콘크리트 길/횡단
09;30 군 철조망 끝지점
09;33~09;45 군 작전도로/길따라 15분 쯤
10;00 군 노고산부대 정문 앞 150m 지점쯤에서 좌측으로
10;09 헬기장 1
10;22 헬기장 2
10;37~10;47 헬기장 3/휴식
10;48~10;53 돌탑/전망바위에서
10;55 송전탑
11;05 사격훈련장 경고문,출입금지/우측
11;16 송전탑 9번
11;19 삼각점봉
11;25~11;30 중고개
11;39 옥녀봉(군 철조망)/우
11;46 표지목/직진,오르막으로
11;52 작은 봉(175m)
12;04 전주이씨 가족묘 지나 매내미고개 도착/‘남경수목원’ 및 ‘울넘어집’ 간판
12;05~13;20 점심(경남아구찜 및 낙지무침)
13;25~13;30 본 산악회 우정 산행팀(허창성,오상환,박찬익,김경희)과 합류/기념 사진촬영
13;30 ‘울넘어집’ 뒤로 진입
13;40 싸리나무 쉼터
13;47 북한산 전망대 쉼터
14;30 숫돌고개 도착(여기서부터 현달산 입구까지 차량을 이용하기로 협의)
15;05~15;50 최영장군 묘, 성령대군 능 탐방
16;00 삼송역(주성필 님 3호선 전철역 하차)
16;30~16;56 현달산 정상/산행
17;05 (주)인선 이엔티(차량이용)
17;09 예빛교회(차량이용)
17;20~17;50 영천사(고봉산)/산행
18;16 일산가구공단(신도시, 차량이용)
18;19 골프연습장(신도시, 차량이용)
18;23 경기인력개발원(신도시, 차량이용)
18;42 교하중고등학교(신도시, 차량이용)
19;28 장명산 입구 하차/산행 속계
19;35~19;50 장명산 산불감시초소 도착~기념촬영
<20;05~23;20> ‘파주 장어구이 전문집‘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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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오늘 한북정맥을 전부 마칠 예정으로 이른 아침 8시에 구파발 전철역 1번 출구로 집합하여 송기사 승합차에 오른다. 희뿌연 안개가 옅게 깔리고 낮 최고 기온은 20도 가까이 오른다는 일기 예보이다. 오늘따라 금년도 최고 기온이다. 날씨도 이만하면 괜찮지만 한북정맥 마지막 날이어서 인지 팀원 8명 모두가 참석하였다.
솔고개를 8시 30분에 도착, 기념촬영을 마치고 서울 근교라고는 미끼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319봉에 본격 진입한다. 소나무 군락과 신선한 공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봄바람은 한결 신선하고 상큼하다. 319봉을 단숨에 오르고는 나니 온 몸에 열을 받기 시작한다. 옷 한 겹을 벗어 배낭에 넣고는 우측 군 철조망을 따른다.
진달래, 철쭉꽃, 벚꽃이 만발하고 아름드리 밤나무 군락지를 오르내리며 9시 30분이 넘어 비포장 군 작전도로에 내려선다. 이곳 등산코스는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전경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고목이 된 벚꽃나무에서 지천으로 떨어진 하얀 꽃가루를 지려 밟고 걷노라니 김소월 진달래의 주인공이나 된 것 같다.
노고산 정상은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정문 앞 150m 전방쯤은 될까, 왼쪽으로 표시된 시그널을 놓치고 앞으로만 진행하던 주성필 님과 부길만 교수님! 또 알바를 하셨습니다. 선후가 교체되어 헬기장 1에 내려서니 건너편의 도봉산 북한산의 산세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본 산악회에 한번쯤 추천하고픈 코스란 생각이 든다.
헬기장 1에서부터 헬기장 3을 지날때까지는 진달래 군락지이다. 이따금 등산객들도 만나면서, 전망바위를 지나 출입금지구역을 넘어서니 일반인들도 몰랐던 중고개에 이른다. 예전에 스님(중)들이 주로 왕래하였다는 의미에서 중고개라고 불렀다는데, 우리나라 성황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무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늘 의자에서 목마름을 달랜다.
이번 구간의 정상은 거의가 군부대들이다. 옥녀봉도 예외가 아니고 군 철조망으로 통제되었다. 철조망 따라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175m의 작은봉에 오르니 구파발에서 일영구간 도로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건너편으로 새 주택단지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이어 15분후인 12시가 넘어 매내미고개에 내려선다.
낮 12시밖에 되 않았다. 오늘은 점심을 먹으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하니까 박종관 님, 요즘 힘든 세상 살아가노라니 영양실조 직전이라며 낮부터 삼겹살을 먹자고 한다. 그래서 점심 메뉴의 선택권을 그에게 부여, 아구찜, 낙지찜, 가자미찜에 막걸리 2병을 여유 있게 먹는다. 오후 1시 20분, 본 산악회 축하 우정산행팀과 합류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오후 산행을 시작한다.
오후 1시 30분, ‘울넘어 집’ 뒤 길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고양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이다. 여유 있게 걸으며 생각하며 유유자적으로 마지막 숫돌고개에 내려서니 한가한 오후 2시 30분. 여기서 부턴 도시 개발로 인하여 정맥 코스도 분명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 아스팔트길은 차량을 이용하고, 숲이 있는 봉우리만 걷기로 상의한 뒤 승합차에 오른다.
가는 길에 우선 문화 유적지를 찾기로 한다. 먼저 들린 곳이 최영 장군 묘, 최영(崔瑩, 1316~1388)장군은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끝까지 고려왕실을 지키려 한 명장이었으나, 새로운 시대의 흐름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고집했던 재상이기도 하였다. 원나라 명나라 교체기인 중국의 급변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으로서 결국은 고려 왕실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이다.
대자산 아래 위치한 최영 장군 묘는 부인 문화 류씨와 합장하였고, 그 뒤로는 아버지 최원직의 묘가 있다. 상상보다는 훨씬 검소하고 단아하다. 결국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후일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조 6년 만에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넋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처형당할 때 권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이를 증명하듯 ‘죽어 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유언을 남긴 후 실제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직접 확인 해보니 그렇지 않다. 후손에 의하면 1970년대 말부터 풀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는 데.........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께서는 아들 최영에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가르침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공직에서 청렴결백하였기 때문일까. 최영 장군이 동주 최씨라는 것도 처음 아는 사실이다.
민간 무속 신앙으로 제일 숭배 받는 최영 장군 묘를 관람하고 내려올 때는 오후 3시 넘는다.
조금은 더운 날씨이다. 좁은 계곡물소리도 한결 신선하게 쫄쫄거리고 철쭉꽃도 선명하다. 그런데 아까부터 더욱 궁금한 것은 성령대군 능도 대자산을 중심으로 같은 산자락에 불과 10분 이내의 거리에 쓴 까닭이 뭘까?
성령대군(城寧大君)은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와의 사이에 4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고 자랐으나 14살 때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태종은 이를 애통하게 여겨 장례를 ‘가례’에 의거하여 엄수하고, 그의 사저(私邸)를 원찰(願刹)로 삼아 명복을 빌게 하였다. 또한 그의 묘소 남쪽에 대자암(大慈庵)을 세우게 하고 사패지(賜牌地 : 국가에서 내려 준 땅)를 내려 불공을 올리도록 하였는데 그 후 대자암은 왕족의 기신제(忌晨祭 : 친족의 忌日에 지내는 제사)의 처소로 자주 이용되기도 하였단다. 그의 맏 아드님이신 원천군은 孝寧大君의 6째 아드님으로서 양자오신 분이다.
최영 장군 묘와 성령대군의 묘가 이웃해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봉분의 크기나 위엄도 한번쯤 비교해 볼만하다. 두 분의 묘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선뜻 인생사 얽히고설킨 인연들은 모두가 덧없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 아옹다옹 견원을 두어 무엇하랴.
見達山은 139m의 낮은 산이지만 서쪽 8km 이내에는 고려 공양왕의 능이 있고, 주위에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산이다. 본달산, 현달산, 견달산으로도 불리고 있으나, 쓸 때는 견달산, 부를 때는 현달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등산로 입구를 겨우 찾아 정상을 찍고 하산하여 이 근처에 사옥을 가진 박종관 님께 길 안내를 부탁하니 그는 이 지역에 견달산, 고봉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듣는 것도 처음이란다.
오후 5시 20분, 영천사 입구에 하차하여 고봉산 정상을 밟으려 하였으나 정상엔 군부대 시설 때문에 통제하여 곧바로 영천사 절로 간다. 작은 사찰이지만 깔끔하고 정겹다. 여유를 부리다가 영천사 경내를 벗어나려는데 타 종교 신자 한 사람이 자기 종교를 믿으라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극성을 부린다. 아무리 포교활동이라지만 남의 종교 마당에 들어와서 무슨 꼴이람? 내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포교를 지칭한 ‘악랄한 수법’이라고 J님이 한 마디 하신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면서 최종 목적지인 장명산을 찾아가는 중이다. 차에 매달린 전자기기의 내비게이션과 자전거를 이곳에서 자주 타기 때문에 길을 잘 안다는 이 프로 님, 이곳에 살면서 더러 나들이 할 때 이곳 지리에 밝다는 조은상 님, 어느 내비게이션이 맞을까 경쟁이나 하듯 송기사에게 좌,우회전을 지시한다. 해는 서해바다에 니엇니엇, 일몰이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넘어가는 일몰이 황홀해 질 때면 오늘 하루도 다 간 걸까.
불과 102m의 장명산은 한반도 문명의 젖줄이었던 한강이 북한 땅을 배경으로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끼고 동서로 흐르는 임진강과 합쳐지는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산봉우리이다. 이곳은 또한 북에서 유유히 흘러 내려오는 예성강을 품은 채 서해안으로 들어가는 곳을 바라보는 곳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이를 마치 용(龍)의 모습으로 능선을 토해내며 오도리와 다율리, 당하리로 뻗어 나간다고도 하였고, 또한 장명산을 중심으로 미래 통일 한국의 도읍지로서도 손색없는 길지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후 7시 30분이 넘어 어둠이 내려앉는다. 장명산 정상은 예상보다 초라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야산에 불과하다. 거미줄이 얽히고설킨 산불감시초소 앞 나무 가지에는 산 꾼들이 남겨 놓은 리본 수 십 개가 전부이고, 몇 발자국 건너편엔 덤프트럭소리 요란한 공사 현장뿐이다. 개발논리에 밀려난 한북정맥의 시발점이요 종착지가 이렇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자손만대에 물려줄 금수강산이 몰지각한 정책 입안자들에게 무참히 죽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식당가의 네온 불빛이 현란해지고 있다.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파주 출판인들이 가끔 찾는다는 ‘장어구이 전문집’이다. 축하 우정 등산을 함께 해주신 왕회장 님, 오 회장님, 박 총무님, 반짝이 님,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 함께해 주신 대원님들, 각자의 소감 한 마디씩 들으며 순배를 하다 보니, 전철운행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물심으로 성원해주신 한국출판인산악회 회원 여러분!, 생사고락을 함께해 주신 대원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한북정맥 완주의 보람을 함께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