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낙동정맥 제10~11구간 (아랫삼승령~독경산~창수령~풍력단지~박점고개까지)
<첫째 날> 제10구간 (아랫삼승령~옷재~독경산~창수령(고개))까지
...............언 제 ; 2015년 2월 21일 (1~7도, 흐리고 가랑비)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황성자, 채호기 ...............산행시간 ; 총 5시간 5분 (휴식, 식사, 알바 ; 포함)
05;30 남부터미널 08;30~09;10 단양휴게소/아침식사 10;35 기산리 온다네 농장(민박) 10;55 아랫삼승령 .................................................................................................................. 11;05 아랫삼승령/정자/출발 11;17 학산봉(689) 11;45~11;53 무명봉/사과 간식 12;05 쉰섬재 12;10 무명봉/우측 15m쯤에 기상관측장비 12;20 우측 5m거리에 임도 12;30~12;55 무명봉/점심/가랑비 내리기 시작 13;04 옷재 14;00~15;05 지경(무슨 뜻일까?) 14;15~14;30 작은 봉우리/휴식 14;50~14;55 임도(밤나무골) 15;02 송진채취 군락지 15;28 묘 15;43~15;50 독경산(683.2m)/헬기장/기상관측장비/삼각점/기념촬영 16;10 창수고개(령) .................................................................................................................... 17;15~18;30 영양 읍내/맘포식당(영양읍 서부리 308~3. T.054-683-2339) 19;10 온다네 민박/투숙
<산행기>....................................................
설 연휴인데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는 게 조금은 염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10여 년 이상이나 다져진 대원들 간의 약속은 오늘 같은 명절 연휴에도 한 사람 빠짐없이 定時에 출발하는 신뢰를 보인다. 새벽 5시 30분이다. 귀성객 때문에 약간은 停滯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고속도로는 이 외로 한산하여 ‘하남 만남의 광장’을 새벽 6시 以前에 거치게 되고, 예상대로 8시 30분에 단양휴게소에서 朝食을 취한다.
그러나 중부 고속도로에 있는 풍기 IC를 탈출하고 난 후부터의 차량은 기산리 민박집까지 국도와 지방도를 지루하리만큼 달려야 한다. 아침 10시 40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도착하는데, 단양휴게소부터의 운전은 비아낭자가 맡았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도하는 여왕벌이다. 운전도 자진하여 먼저 나서는 것은 남성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 달 만에 그때 그 집 ‘온다네 민박 집’에 도착한다.
김병철 사장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서둘러 ‘아랫삼승령’으로 운전을 재촉하려는데 그는 10리터짜리 패드 병에 고로쇠 한 병 담아주면서 맛이나 보라고 건네준다. 신선하고 달콤한 樹液이 입안을 감치는 것을 보니 봄은 벌써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것으로 착각한다.
차량은 저시마을 입구에서 시멘트도로를 잠시 따르다가 곧바로 오른쪽 비포장 임도의 눈길을 치고 오른다. 울퉁불퉁한 바위 길에 꼬불꼬불한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면 조금 위험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11시가 조금 못되어 ‘아랫삼승령’에 도착한다. 안개비가 내릴 듯 말 듯 한 우중충한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와 무척 어설프다.
찌뿌듯한 어깨를 비틀고 발목을 돌려가며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뒤 11시 5분에 낙동정맥 제10구간인 ‘아랫삼승령’亭子를 출발한다. 하얀 안개가 잔뜩 끼어서 전망은 없으나 그래도 걸어볼만한 완만한 오르막이다. 출발 10여 분후에 첫 번째 봉우리인 689m의 학산봉에 올라서니 전망은 어디가고 사방은 모두가 안개뿐이다. 이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鶴처럼 생겼다는 데 확인은 되지 않고 그냥 지난다.
11시 45분에 다시 그만한 무명봉을 치고 오르니 배낭이 너무 무겁고 뻥뻥하다. 얼른 사과 한 개를 꺼내 한 조각씩 입에 물고 나니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어 쉰섬재에 도착하는데 꽤나 넓은 평지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를 쉰 섬까지 수확할 수 있는 넓은 밭(공터)이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넓은 공터 같지는 않아 보인다. 또 이곳에는 ‘쉰섬’이라고 하는 사람이 실제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다시 내리막, 오른쪽 5m쯤에 임도가 있는 지역을 지나 이름 없는 무명봉에 올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보자기를 편다. 찐 고구마에 각종 빵과 과일들, 비아표 건강차와 녹차, 커피까지 세심한 준비를 했다. 다만 밥만 없을 뿐이다. 명절 시댁 식구들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밥을 지을 시간조차 없어서 미안해한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막 끝내려는 순간 우려했던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천에 대비하여 복장을 챙긴 다음 능성이를 하염없이 가고 있는데 이젠 바람결도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하얀 안개에 갇혀 앞도 뒤도 분간이 되지 않는 고독한 길이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참나무 낙엽을 밟으며 안개 낀 숲속을 걷다보니 옛 이름으로 烏峴이라 불리던 ‘옷재’를 지난다. ‘옷재’란 까마귀가 어린아이를 구해준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지만 그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찾을 수가 없다. 또 이곳과 연결되는 望霜(谷)골은 서리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무명 한 봉우리를 넘고 이번엔 ‘지경’이란 팻말이 한글로 걸려 있는 곳을 지난다. ‘지경’이란 또 무슨 뜻이지? 영덕과 영양의 경계를 의미하는 걸까. 우리는 지금 영덕과 영양을 경계하는 능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로만 되어 있으니 그 뜻을 짐작할 수가 없다.
안개비가 부슬부슬 하염없이 내린다. 2시 50분이다. 이 번엔 산 중에서 웬 비포장 임도를 만난다. 지도상의 밤남골(?)이다. 임도를 횡단하여 7~8분쯤 걸었을까.소나무 송진채취 군락이다. 일제치하의 상처가 아직 남은 걸까 아니면 6.25전쟁을 전후한 민초들의 고달픈 삶의 흔적일까. 차라리 아픈 상흔(傷痕)을 참고 꿋꿋하게 자라준 소나무의 기상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청명한 날씨 같으면 이 쯤 해서 목적지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덴데 안개에 꽉 막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무심코 묘 한 기 옆을 지난다. 자욱한 안개 틈으로 이번엔 城壁처럼 우뚝 선 시커먼 산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숨 가쁘게 치고 올라 정상에 서니 기상관측 장비시설이 있는 헬기장이다. 삼각점이 있고 팻말엔 683.2m의 독경산이다.
獨慶山은 이 근방에서 홀로 솟은 산이라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많이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산자락 여느 스님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를 감차고 울려 퍼진데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오늘의 날씨와도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인증샷을 누르고 급히 하산한다.
오후 4시 10분, 비에 젖은 해발 498m의 창수고개(蒼水嶺)이다. 일명 ‘자라목이’라고도 하는데 영덕군 창수에서 올려다보면 자라목 같이 생겼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금은 918번 국도로서 영덕과 영양을 이어주는 고개지만 이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울치재’로 넘나들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蒼水院이라고 하는 숙식 시설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곳 출신의 작가 이문열이 ‘젊은 날의 초상’을 만들어낸 배경도 이곳 창수령이다. 궂은 날씨여서 촘촘히 살펴하지도 못하고 ‘온다네’ 농장 김사장을 호출을 하여 승합차에 오른다. 민박집으로 가는 지름길은 눈으로 덮여 있고 또 땅도 얼어 읍내로 돌아가야 된단다.
이왕 시내를 거친다면 이름 난 ‘맘포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다. 주 메뉴는 돼지고기 찌개(두루치기)이다. 순 국내산 재료로 만든 반찬에 곱창을 조금 섞어 만든 두루찌개이다. 칼칼하고 매콤한 맛이 별미이고 입에서 자꾸 당기는 것을 보면 영양의 대표 식단으로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함께 해 준다. 내일 점심때 먹기 위해 먹다 남은 반찬을 조금 싸 달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영양의 넉넉한 민심이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어둠도 서서히 다가오는 6시 30분에 식당을 나선다.
저녁 7시 10분에 대원들은 온다네 민박집에 내리고 나는 밤이 더 늦기 전에 저시마을 30년 묵은 고추장을 가지러 간다. 지난달에 주민 한 분에게 부탁한 고추장이다. 저녁 7시 30분이다. 고추장을 소개해준 윤씨 할아버지는 벌써 취침 준비를 하고 있나보다. 전화상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옆집에 있는 고추장을 구한다. 짙은 안개 속, 가랑비는 가로등에 반사되어 뿌옇게 날리고 사방은 寂寞江山이다. 캄캄하고 안개 자욱한 산길을 내려와 온다네 민박집에 도착하니 8시 20분, 대원들은 아카시아 꽃술을 마시고 비아낭자는 전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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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제11구간 (창수령/고개~울치재~풍력발전단지~명동산~박점고개까지
...............언 제 ; 2015년 2월 22일 (2~8도, 강풍과 짙은 안개, 가랑비, 오후에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황성자, 채호기 ...............산행시간 ; 총 8시간 43분 (낙동정맥 7시간 43분+임도 1시간) .............................................................(휴식, 식사, 알바 ; 포함)
06;10 온다네 농장(민박) 출발 07;02 창수령 도착 ................................................................................................. 07;10 창수령(고개)/자라목이재/918번 도로(영덕-영양)/산불감시초소/낙동정맥 출발 07;30 산불기계화 진화훈련장 900m안내판 07;36 무명봉/좌 08;30~08;42 울치재/비포장임도 08;48 527.1봉/삼각점 08;53 당집 09;35~09;52 풍력발전단지 임도/강풍에 짙은 안개와 가랑비/부교수 가슴 통증/우 10;06 C14 풍력기 10;09 D13, D14풍력기 10;15 OK목장 입간판/좌 10;25 E18풍력기 10;40 F24, F25풍력기 11;14 H30, H31풍력기 11;28 I31, I35, I36, I37, I38풍력기 11;40 J38번 풍력기/안개 걷히고 전망이 보이기 시작, 이어서 J39, J40풍력기 11;47 좌측 가파른 산으로 진입/ 우측에 마지막 J41번 풍력기 12;15 봉화산 12;18~12;50 봉화산과 봉수대 중간 봉에서 점심 12;52 봉수대 13;52~14;02 명동산 직전 양지바른 봉에서 간식 14;12~14;15 명동산(812.4m)/산불 감시 카메라/목재 데크/전망 좋음 14;28 화림지맥 분기점/우 14;53~15;05 박점고개/낙동정맥 제11구간 종료/비포장 임도를 따라 하산 .................................................................................................................. 16;00~16;40 삼의 3교/블루밸리쉼터/온다네 민박 김병찬 사장 대기, 차량으로 픽업 17;05~18;15 안동시 풍산읍 `황소곳간`(풍산대로1029, T.054-843-1002)/저녁식사 21;50 하남 만남의 광장 22;15 서울남부터미널/해산
<산행기>...................................................
비아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주방으로 뛰쳐나가 밥을 새로 짓고 국을 끓여 금방 밥상을 차린다. 일찍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주인 김사장에게 운전을 부탁하기 위해 새벽잠을 깨운다. 그래도 그는 귀찮은 내색 없이 밝게 대해 주어 우린 그냥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한다. 6시 10분에 민박집을 출발하여 눈 덮인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읍내를 돌고 돌아 창수령에 도착하는데 7시가 넘는다. 아침은 아침인데 밝아진 아침 같지가 않다. 안개 속에서 실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거칠다.
출발 20분후에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산불기계화 진화훈련장’ 900m라고 적힌 안내판을 지난다. 이어 688봉을 넘어 685봉인 무명봉에서 급히 좌측으로 떨어지니 안개 속, 마치 미궁으로 빠져 드는 듯 하다. 그리고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울치재’가 나타날 때까지는 쉬지 않고 빡세게 걸어보리라 마음먹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데 8시 30분에 비포장 임도를 만난다. 울치재이다. 918번인 창수령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울치재 도로가 영덕과 영양을 왕래하던 유일한 도로였다는데 그 명성 어디가고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고 쓸쓸한 비포장 임도로 전락한 걸까.
영양이 옛 영해부에 속해 있을 때 영양 사람들은 영해부 관리들의 수탈과 천대를 받아가며 稅穀을 잔뜩 지고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힘든 고통과 박탈감으로 이 고개를 넘나들며 얼마나 많이 울었기에 ‘울재’ ‘蔚嶺’, ‘泣嶺’ 또는 ‘울치’라고까지 하였을까. 울창하고 험한 이 고개는 또한 맹수의 출몰도 잦아 夕陽에 이 고개를 넘으면 반드시 참상을 입는다는 속설까지 있었으니 ‘울치재’의 한이 오늘의 안개처럼이나 서려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다. 오늘날 안동의 간고등어가 유명한 것은 이 고개의 애환을 빼놓을 수 없다. 영해에서 잡은 고등어를 안동이나 영양으로 공급하려면 이 험준한 고개를 지고 넘어야 하고, 이 고등어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소금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날 간고등어가 명품으로 상품화 되었지만, 옛날 우리 민초들의 삶은 이 고개가 곧 고통의 고개요, 울고 싶은 고개였으리라.
아침 8시 40분을 넘겨 울치재를 횡단하고 527.1봉의 삼각점을 찍는다. 그리고 순탄한 산길을 무심으로 쫓고 있는데 왠지 기운이 음산하고 칙칙하다. 자세히 보니 안개 속으로 가려졌다 보이기를 반복하면서 언뜻 보이는 것이 허름한 당집이다. 무당집일까. 카메라 컷을 누르고 난 뒤 먼저 출발하려는데 비아낭자는 무섭다며 같이 가자고 옷깃을 잡는다.
아침 9시 30분이 될 무렵에 550m 정도의 얕은 능선을 걷는다. 세찬 비바람은 사정없이 귀때기를 때리고 사방은 안개로 뒤 덮여 어딘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중 하늘에서는 프로펠러 찢기는 소리가 ‘웅웅’‘찍찍’ 공포를 자아내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기에 만교수는 심한 트림과 가슴 답답증을 호소하면서 힘겹게 걷는 중이다.
9시 35분에 풍력발전단지 초입인 임도에 내려선다. 만교수는 급하게 따뜻한 물을 요청하고, 버럭도사는 잽싸게 배낭 속 보온병 뚜껑을 열어 컵에 따른다. 강풍은 세상을 삼킬 듯이 요란을 떨고 안개는 자욱하다. 안개 때문에 5~6미터 거리도 분간이 되지 않는데 공중에서는 보이지도 않은 프로펠러소리가 ‘삐거득’거리며 소란을 피운다.
손과 발, 귀는 시리오고 배낭커버와 모자, 우의는 바람에 찢어질듯 부풀어 오른다. 만교수의 동태를 살펴보니 얼굴빛이 약간 창백하고 숨을 몰아쉬며 답답해하는 모습이 영력하다. 따뜻한 물을 마신 후 한 참 동안이나 안정을 취하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데 다행이 16~17분 만에 얼굴빛이 다소 화색이 된다.
풍력단지 내의 시멘트포장길은 매우 복잡하다. 동아지도사에서 만든 낙동정맥 앱을 켜고 길을 쫓는다.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되면서 길이 많이 변경되었고 훼손되었다. 시멘트 도로도 서로 얽혀 있어 헛갈리기 십상이고, 고개는 쳐들어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분다. 그러나 앱 덕분에 우리는 알바 없이 길을 따라가는데 앱을 지원해준 동아지도사 안동립 사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시간 내어 식사대접이라도 꼭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안개 속 길을 헤쳐 나간다.
안개 속 풍력기는 보이지 않고 하늘을 받혀주는 거대한 기둥만 이따금 나타난다. C14, F24, F25, D13, D14번이고 쓰인 기둥 옆을 드문드문 지난다.
OK목장 입간판을 10시 15분에 지나고 이어 E18, F24, F25번과 H30, H31, I31, I35~J38번을 거친다. 그리고 J38번에 이르니 남쪽에서부터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청명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11시 40분을 지날 때쯤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와! 함성과 함께 스마트 카메라를 들여대고 셔터를 누른다. 이른 새벽부터 4시간이 넘도록 역경을 딛고 걷어 온 것은 이러한 보람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제 건너편 J39, 40번을 따르다가 마지막 풍력기 J41번을 10m우측에 두고 좌측 가파른 산으로 숨 가쁘게 기어오른다. 비는 거쳤으나 아직 바람은 억세게 불고 구름은 마냥 쫓고 쫓긴다. 햇살이 비칠 때면 봄기운도 완연한데 바람은 아직 한겨울이다.
12시 15분에 733m의 烽火山 정상에 선다. 그러나 좋다는 전망은 볼품이 없어서 건너편 봉수대 전방 100여 미터 앞에 있는 봉우리로 오른다. 채시인의 배낭커버는 언제 날아갔는지 온데간데없고, 한 바탕 바람이 몰고 간 앞산 언저리에는 거대한 풍력단지가 색다른 경관으로 다가온다.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비아님이 몸에 좋다는 현미 햇반을 준비했는데, 데운 시간이 오래되어 차가워졌다. 뜨거운 물을 붓고 대충 입으로 쓸어 넣을 수밖에 없다. 이때 채시인은 비아낭자를 일만 시킨다고 안쓰러워 하지만, 우리가 그를 여왕을 받든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12시 52분에 봉수대를 거친다. 봉수대라면 나라에 큰 위험이 있었을 때 위급함을 朝廷에 알리기 위하여 불꽃을 피우는 곳이다. 그런데 봉수대가 봉수대 같지 않고 담과 돌무더기로 둘러싸여 있어 무슨 祭壇같은 느낌이 든다. 오후 1시이다. 이젠 쭉 뻗어나간 코스를 따라 나아갈 길만 남았다. 겹겹으로 바라보이는 명동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시간을 좁혀가며 숨 가쁘게 오른다.
오후 1시 52분이다. 지루하리만치 치고 오른 이 봉우리가 혹시 明童山일까 하고 주저하며 우측 양지쪽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고 간단한 간식을 취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여 앱을 꺼내 확인해보니 명동산까지는 아직 조금 더 진행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명동산 방향으로 길을 막아 놓아 잠시 헛갈렸다.
하마터면 알바를 톡톡히 할 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막 일어서려는데, 버럭도사는 바지의 짚을 만지며 큰일을 저지려고 한다. <생략> 한 바탕 웃음으로 활력을 찾은 우리는 2시 12분에 표적봉우리였던 오늘의 최고봉인 해발 812.4m의 明童山에 서게 된다. 삼각점과 목재 테크가 깔려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망이 일품이다. 지나온 풍력단지가 아련히 다가오고 우리가 밟아가야 할 정맥코스도 막힘이 없다.
‘명’을 ‘맹’으로 발음하는 경상도에는 명동산도 맹동산이라고 불렀으리라. 이 산 아래에 두뇌 명석한 아이(明童)가 살았다는 뜻이라는 데 그렇다면 조지훈, 이문열, 김주영 님 같은 문인들이 배출 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한 것일까. 명동산에서 10여분쯤 고도를 낮추어 805m의 봉우리에 도착하니 화림지맥이 이곳에서 떨쳐 나간다.
華林枝脈은 영덕군 지품면과 영해면, 축산면을 가르며 華林山을 거치고 강구항에서 맥을 다하는 32.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곳 분기점에서 낙동정맥은 우측으로 틀어 고도를 낮춘다. 오후 2시 30분이 지나고, 2시 53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오늘의 목적지인 박점고개에 도착하는데 차량조차 왕래가 없는 비포장 임도이다. 고민이 생겼다. 명동산에서부터 운전을 부탁했던 김사장에게 전화는 불통이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통 전화로서는 되는 것이 없고 답답하다. 물어볼 인적도 없고 차량도 없는 산간 奧地에서 몸은 점점 지쳐 천근만근이다. 좀 더 直進하여 포도산을 경유하고 하산하자나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우측 삼의 방향으로 임도를 따르자니 어디로 빠질지도 몰라 100프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는 터.......
오후 3시를 넘기면서 우측 삼의 방향 임도를 따른다.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방향감각만 믿고 꼬불꼬불한 비포장임도를 내려간다. 낙석이라도 금방 떨어질 듯 한 산모퉁이, 깎아지른 절벽, 녹지 않은 얼음 골, 지겹도록 내려와 김사장께 전화를 하니 눈치 빠른 김사장님은 삼의교 길목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오후 4시, 블루밸리쉼터가 있는 삼의3교 앞이다.
삼의계곡 물 맑은 도랑에서 대충 손울 씻고 차량을 인계받으니 4시 40분, 김사장은 배웅 나온 부인 차량으로 옮겨 타서 손을 흔들고, 우린 안동시내를 거처 풍산에 있는 ‘황소곳간’으로 내비게이션을 맞춘다.
오후 5시 5분에 들어선 ‘황소곳간’은 그 규모면에서 우선 놀랍다. 13개 농가가 뜻을 모아 ‘안동한우명품작목회’란 단체를 만들어 공동 운영하는 업체이다. 220평(728평방미터)규모의 시설에 300석의 좌석을 갖춘 한우요리 전문점이다. 풍산 학가산 일대의 청정지역에서 엄격히 사육 관리하는 한우고기는 1등급만을 취급한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상경 길에 오른다. 예천, 점촌 함창 IC를 거쳐 충주휴게소에 잠시 내렸다가 버럭도사에게 핸들을 넘긴다. 이번 산행에서 버럭도사는 감기 몸살이 아주 심하다. 자신과의 싸움과 사투를 벌리면서도 굳이 차량키를 뺏으며 페달을 밟는단다. 연휴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의 차량은 더욱 한산하여 곤지암, 하남휴게소를 무사히 거치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10시 15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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