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낙동정맥
제9회 낙동정맥 제16~17구간 (질고개~성볍령(재)~벼슬재(중간지점)~한티재까지)
2015.06.08 Views 135 산누리
제9회 낙동정맥 제16~17구간 (질고개~통점재~성법령(재)~벼슬재(중간지점)~한티재까지)
<첫째 날> 제16구간 (질고개~통점재~가사령~성법령(재)까지))
...............언 제 ; 2015년 5월 9일 (14~24도,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7시간 50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05;30~06;00 서울 남부터미널~하남 만남의 광장 출발
08;30~09;10 안동 ‘엄청난해장국’(안동시 옥동 773~10 / 054-857-8576)
........................................
10;10~10;20 수부정/대리기사(한마음농산 대표)
10;30~10;40 질고개 도착~질고개 출발
10;50~10;55 산불감시초소(감시원 혼자 논어, 시경을 읽고 있음)/조망 좋음
11;50~11;59 휴식
12;45 분지형 넓은 능선
12;55~13;30 보도블록이 있는 무명봉 / 폐헬기장을 지나서 점심(비빔밥)
13;40 785봉 / 시 경계구간 표시/포항산악구조대 팻말
13;50 유리산(805.5m) / 보도블록 무더기/폐 헬기장
14;28 간장현 안부/비포장 임도
14;35~14;41 바위에서 잠시 휴식
14;45 이정표(통점재 1.6km, 주왕산 25.3km, 황장재 71.6km)
14;59 706.2봉 / 시 경계구간 / 이정표(통점재 0.5km)/좌
15;10~15;20 통점재 / 2차선 도로
15;58~16;10 776.1봉 / 갈림길 삼거리/좌
16;27 묘
16;33~16;38 733.9m / 팔봉,보현기맥 분기점/좌
16;48 옛가사령임도(비포장)
16;58~17;20 가사령 / 2차선 도로
17;32 599.6봉
18;28~18;32 709.1봉/삼각점/폐 헬기장/내연,비학지맥 분기점/구간산행 종료
18;40 성법령(재)/2차선 도로/정자 쉼터 도착/산행종료
..........................................
18;40 대리기사 성창재 / 승합차 탑승
20;30~21;30 상옥식당 저녁식사/삼겹살에 된장찌개
21;50 철없는 민박 투숙/취침
<산행기>//////////////////////////////////////////////////////////////////////////////////////////////////////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록이 상큼하게 다가온 두 번째 토요일 새벽이다. 더구나 이른 아침 6시의 중부고속도로는 나들이 차량들이 줄을 이어 달리고, 아침을 여는 일출의 광경도 오늘따라 더욱 눈부시다. 차량의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싶어도 가로수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들에 현혹되어 자주 제동이 걸린다. 순백한 하얀 꽃들이어서 더욱 깔끔하다. 사발에 소복이 담아 놓은 쌀밥(이밥)을 연상하여 ‘이팝나무 꽃’이라고도 하고, 立夏때 피는 꽃이라고도 하여 ‘입하나무’가 ‘이팝나무’로 변음 되었다고도 한다.
전에는 그저 지나쳐 보던 꽃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부터 이팝나무 꽃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청순해서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을 보면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의 꽃말처럼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일까. 올해는 특히 이팝나무 꽃들이 지천으로 만발한 것을 보면 벼(쌀)농사는 풍작은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중부고속도를 탈 때마다 단양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것을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 보잖다. 음식도 한 군데서 같은 종류만 먹다보니 이제 지겨울 때도 되었다. 그러나 서안동IC를 빠질 나올 때까지 휴게소가 없어서 결국은 안동시내에 있는 식당 한 곳을 택한다. ‘엄청난해장국’(안동시 옥동 773-10/T.054-857-8576)집에서 뼈해장국, 선지해장국, 굴해장국으로 식사를 하는데, 경상도 특유의 짠 맛이 흠이라면 흠이다.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가며 10시 10분에 얼음골‘수부정’에 도착한다. 대리운전을 해 주기로 한 성사장이 반갑게 맞으며 칡즙, 오미자즙을 한 봉지씩 나눠주고, 지난달에 숙박 했던 수부정의 젊은 여주인도 먼발치에서 알아보고 달려와 인사를 한다. 창이 넒은 해가림 모자를 쓰고 텃밭에 잠시 나가는 중이란다. 햇살도 푹 퍼진 늦은 아침이다.
불과 20여일 만에 만난 얼음골 산천은 한창 신록으로 익어가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에 질고개에 도착하여 주섬주섬 필요한 장비를 챙기고, 10시 40분에 질고개를 출발한다. 지난달에 화투를 치며 요란을 떨던 컨테이너 박스 집엔 오늘은 텅텅 비어 있으니까 오히려 이상하다. 정맥 코스도 완만한 오르막이고, 날씨도 20도 내외의 맑은 날씨여서 등산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출발하여 10여분 쯤 걸었을까.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전망도 탁 트이고 바람도 시원하여 잠시 멈춘다. 그런데 산불감시초소 안에 직원 한 사람이 초소 팔걸이에 크고 작은 옥편을 펼쳐놓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논어와 시경이란다. 그 동안 사노라고 미뤄왔던 책을 다시 펴고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란다.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연세를 물어보니 나와 비슷할 것 같다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해준다. 실은 나 보다 훨씬 많은 70대 후반이다.
이번 코스의 산들이 유명한 산 들은 아니지만 500~600m를 전후한 봉우리에 분지형 능선을 더러 있고, 또 봉우리 주위에는 보도블록이 자주 눈에 띤다. 오르내리막을 얼마를 걸었을까. 어느덧 배가 고파오기에 시계를 보니 12시 55분이다.
이번에도 보도블록이 있는 무명봉에 올라 폐헬기장을 지난다. 이어 그늘지고 전망있는 곳에 보자기를 펴니 비아표 비빕밥이 차려진다. 점심을 각자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못미더웠던지 비아는 영양밥과 각종 야채에 열무김치까지 준비해 와서는 섞고, 비비고 주무른다.
그리고는 순수 국산 참기름을 두르니 이거야 말로 식선이 따로 없다. 버럭도사는 이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진짜 나는 황작가 아니면 굶어야 돼, 알았지 황작가, 나 좀 책임 져!’ 길님이 다시 받는다. ‘뭘 어떻게 책임지란 말이야! 허, 참’
점심을 먹고 출발 10여분 후에 785봉에 올라서니 포항산악구조대에서 마련한 시 경계구역이란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오후 1시 40분이다. 이어 다시 10여분 후에 오늘의 초고봉인 805.5m의 유리산에 오른다. 이 봉우리에도 보도블록 무더기가 있고 ‘유리산’이란 이름은 ‘백두산타이거’와 ‘라마스떼클럽’에서 걸어 놓은 좁은 리본 정도이다. 폐헬기장이 있고 꽤 높은 산이지만 이름 없는 무명봉에 불과한 것을 보면 주위에 유명산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오후 1시 50분이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지루한 산행을 이어가다가 오후 2시 30분에 비좁은 고개에 내려서니 비포장 임도의 간장현이다. 644m의 干長峴이란 곳이 움퍽 파인 고개가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간장마을에서 올라오는 고개라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멀리서 보면 긴 방패처럼 생겼다고 해서 방패 간(干), 긴 장(長)으로 붙였다.
오르막의 연속이다. 지겹다고 생각하면 더욱 지겨운 법이다. 선두에서 걷던 길님이 길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 물 한 모금만 마시고 가잖다. 울창한 숲속에 이는 시원한 바람도 마시고, 물 한 모금으로 타는 목마름을 한 방에 날린다. 그러나 앞으로의 휴식은 전망이 좋은 곳이든가 길 표시가 명확한 곳에서 쉬기로 하고, 다시 출발한지 4분 만에 통점재 1.6km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만난다. `거 봐 , 금방 이정표가 나오잖아!`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706.2m의 시 경계구간인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서야 통점재에 다다르는데 2차선 지방도이다.
옛날에 사기그릇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 하여 통점리라 하고, 이 고개이름을 통점재라고 하였단다. 이곳에서 사기그릇 공장을 생업으로 꾸려오던 주민들은 울진삼척 지역에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 이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그 아래 중기리란 마을로 이주시킨 곳이다. 지금은 외딴 가구 2채와 조그만 암자만 한 채씩 남아 있단다.
또한 통점재는 상옥리외 중기리는 이어주는 고개이다. 도로변에는 청송군 부동면 얼음골에서 매년 개최하는 세계빙벽등반대회 홍보 간판도 눈에 띤다. 지금은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이지만, 사기그릇 공장 이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숫한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이 고개를 뒤로하고 다시 출발하여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20분을 넘긴다.
이번 정맥 길엔 길님이 무척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출판학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술을 조금 절주 하였더니 그런 것 같다며 계속 선두를 고수한다. 오후 4시의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다할 즈음 776.1봉에 올라선다. 전망은 별로이지만 간식타임 삼아 한 숨을 돌리고는 코스를 좌측으로 튼다.
700m를 전후한 마루금이 끝없이 펼쳐진다. 오후 4시 30분이 넘었을 때 733.9m에 올라선다. 특히 이곳에서는 팔공기맥과 보현기맥이 갈라서게 되는데 지도상에는 나타나 있지는 않다. 고라산(古羅山 744.6m)에서 분기한 산줄기는 석심산(石心山 450.6m)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고, 이 두 산줄기가 팔공기맥과 보현기맥이다.
普賢枝脈은 가사령 북서 쪽 봉우리인 古羅山(744.6m)의 남동쪽 낙동정맥에서 따로 남서쪽으로 분기하여 면봉산과 보현산을 지나 석심산으로 이어지는 두 줄기 중 북 쪽의 산줄기를 말한다.
하지만 `기맥`이냐 `지맥`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러나 이곳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정표에는 `대구 마루금산악회`에서 `기맥`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한편 박성태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의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보현지맥이라고 하고, 석심산에서 남쪽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팔공지맥으로 표기하였다.
아무튼 우리나라 지도에서 지맥과 기맥의 표시가 혼돈되어 있지만 꾼들은 막연히 꼭 한 번 도전해 보고픈 산맥이기도 한다. 그런데 “비아씨! 어느 자료를 보니까 이곳을 `팔보지맥` 분기점이라고 표기하였더러고, 그런데‘팔’자가 찢겨나가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읽어야 돼요?”
팔보기맥 분기점에서 길은 좌측으로 꺾어 내려 와 오후 4시 50분에 비포장 임도에 내려선다. 옛 가사령이다. 지금은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어 10여분 후면 곧 도착하겠지만, 이곳이 원래의 가사령인 듯 하다. 가사령이 지금은 포항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영일군에 속해 있었으며, 지금도 말이 포항시이지 워낙 높은 산이 많고 오지여서 文士와 筆客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오후 4시 55분에 내려선 가사령(佳士嶺)은 상옥리와 가사리를 있는 69번 지방 도로이다. 낙동정맥 마루금을 몽땅 끊어놓을 정도로 깎아 놓은 절개지이지만, 옛날에는 佳士里란 동네가 솥의 명산지였다고 한다. 佳士里에서 생산되는 솥의 질이 워낙 좋아 장안의 妓房까지 소문이 자자하였다고 하여 이를 빈정대는 이름으로 가시내골이라 고도 하였고, 이를 다시 음역하여 佳士里로 이름 된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구간을 종료하는 경우도 많으나, 우리는 내일 구간과 시간을 고려하여 성법령까지 약 1시간 10여분을 더 걷기로 예상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뗀다. 요즘은 해가 길어 저녁 7~8시까지만 하산해도 문제될 것이 없고, 기온도 춥지 않으므로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후 5시 30분에 599.6봉을 지나 지루하게 뻗어가다가 오후 6시 30분에 이르러서야 오늘의 종착지인 709.1봉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고 이곳 폐 헬기장에서 내연지맥과 비학지맥을 가르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1일차 구간종료를 7시간 50분으로 마무리하였으나 아직 성법령까지는 10여분이 더 소요 될 듯 하다. 마지막 남은 간식을 아낌없이 털어 먹고, 목을 축인다.
이곳에서 분기하는 내연지맥은 성법령을 거쳐 보경사의 뒷산인 내연산으로 이어지다가 영덕 오십천으로 떨어지는 산줄기를 말하지만, 비학지맥은 기북면 뒷산인 비학산을 거쳐 포항시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제 709.1봉에서 좌측으로 꺾어 10분 후에 성볍령에 도착한다. 산마루턱의 쉼터인 정자가 있고, 조그마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오후 6시 40분이다.
성법(省法)령이란 조선시대까지 부곡(部曲)이 있었던 지역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전국 각지의 산골짜기에 건설한 일종의 집단 수용지를 말한다. 주로 천민이나 노예, 반역민등을 수용하여 출입을 통제한 상태로 무기, 농기구, 유기, 자기, 토기 등을 생산하던 일종의 공업단지인 셈이기도 하다.
성법리란 옛날 역모 죄로 몰린 사람들을 천민으로 격하하여 이곳으로 수용한 후 법을 반성 하라는 뜻에서 성법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에는 질그릇, 솥, 먹, 병기, 농기구 등을 만드는 공장이 많았던 걸까.
그러나 대리운전 성사장이 성법령 길을 몰라 헤매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성법령이라 하지 않고 성법재로 부른다는데, 굳이 관이 주도하여 간판을 한자음으로 표기하여 부르고 있다.
얼마 후 승합차가 도착하고, 승합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저녁 8시 30분에 상옥식당 앞에서 내린다. 삼겹살구이에 된장찌개이다. 이곳에 차려진 모든 재료는 해물 빼고는 전부가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식단이란다. 이곳 마을은 상옥과 하옥이 있는데 이곳 상옥마을은 해발 45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특히 상옥은 임진왜란 때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고, 유명한 하옥계곡은 옥계계곡의 원류이기도 하다.
원래는 상옥식당에 민박까지 예약해 놓았는데, 오늘까지 머무르기로 했던 손객이 하루 더 체류하고 간다기에 부득이 이 집에서 소개해 준 ‘철없는 민박’으로 핸들을 돌린다. 골짜기의 밤 9시 30분은 한 밤중이다. 넓은 도로에서 1차선 하옥계곡으로 접어드는데, 사방은 깜깜한 칠흑이고 길은 꼬불꼬불하여 아흔 아홉 구비는 되는 듯하다. 비아는 연신 귀신이라도 튀어 나올까봐 소스라치게 놀라고, 나뭇가지는 척척 차량을 휘감는다. 강원도에만 깊은 오지가 많은 줄 알았는데 경북지방에 이런 오지 있는 줄은 몰랐다고 이구동성이다.
계곡 옆 좁은 다리를 건너 하옥계곡변에 있는 ‘철없는 민박 집’에 여장을 풀고 나니, 적막강산이다. 꾼들의 시선은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칼바람소리에 고정되고, 따라 놓은 캔맥은 김빠진 맥주신세가 되어 뒷전으로 밀린다.
/////////////////////////////////////////////////////////////////////////////////////////////////////////////////
<둘째 날> 제17구간 (성법재(령)~배실재(벼슬재)~침곡산~태화산~한티재까지)
...............언 제 ; 2015년 5월 10일 (14~25도,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6시간 25분(휴식, 식사시간 ; 포함)
05;30~05;55 철없는 민박 출발~상옥식당 도착
06;40~07;20 상옥식당(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2리 330-3/(054)262-6416)/아침식사
..............................................................
07;40 성법재(령) 출발
07;50 709.1봉/삼각점/헬기장/내연지맥, 비학지맥 분기점
08;43~08;50 사관령(782m)/봉이 아니고 왜 령일까. 조망이 탁 트이고 전망 좋음
09;15 능선 분기점/우
09;28 묘
09;43 무명봉
09;53~10;05 벼슬재/배실재/평평한 안부/낙동정맥 중간 현수막(평일산행친구들 ; 태백 매봉산 212.9km, 부산 몰운대 219.7km)/간식
10;18 492.4봉
11;02 월성 최공 묘2기
11;37~11;59 침곡산(725.4m)/정상석/산각점/한티재 2시간 표시(포항 팔도산악회)
12;15 송전탑
12;17 한티재 1시간 40분 표시(포항 팔도산악회)
12;32 무명봉/좌
12;35, 12;35, 12;38, 12;52 묘
13;06~13;12 태화산(676.8m)/산불감시초소/개(멍멍)/우측으로 급한 내리막
13;18~13;55 우측 벌목지 / 시원한 곳에서 점심
14;37 먹골/재
14;47 334봉
14;52 의성 김공 묘
14;56 한티재 터널 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하산/구간산행 종료
15;05 한티재 터널 앞/산행종료
.....................................................
15;30 한티재 출발
16;50~17;40 영천 은해사(銀海寺) 탐방
18;10~19;00 영천 영화식당/저녁식사 후 서울로 출발
23;10~23;25 하남 만남의 광장
23;50 서울 남부터미널 도착/해산
<산행 후기>///////////////////////////////////////////////////////////////////////////////////////////////////
새벽 5시 30분에 ‘철없는 민박집’을 나서는데 글자 그대로 深山幽谷이다. 어제 밤에 올 때와 떠날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숲에서 품어 내는 피톤치드의 상큼함과 새소리, 계곡물소리가 더욱 신선하다. 꼬불꼬불한 도로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을 가르고, 유곡은 깊은 산과 산 사이를 비집고 고도를 높여간다.
5시 55분에 상옥식당에 도착하니 약속한 6시가 되지 않아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침식사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대리운전을 맡아주기로 한 주인아저씨는 낮에 바쁜 일이 갑자기 생겼다며 지금 승합차를 하산지점인 한티재에 미리 갖다 놓자고 한다.
우리는 그의 제안에 感之德之할 따름이다. 승합차는 찬님이 자진하여 혼자 몰고 갔다 오겠다며 주인아저씨의 트럭을 따라 나서고, 우리는 찬님이 돌아 올 때까지 식사를 미루고 기다린다. 그럭저럭 40분 후에 찬님이 돌아오고 ,아침식사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7시 20분에 마친다.
오늘 아침 메뉴는 염소탕이다. 일꾼들 먹이려고 어제 한 마리 잡은 염소를 탕으로 만들었는데 뜻하지 않은 보신탕을 먹는다며 흡족한 표정들이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시골의 인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더구나 ‘철없는 민박집’에 숙박료 10만원을 지불했다기에 ‘촌에서 그렇게 많이 받는다’며 언짢아하기도 한다. 특히 오늘 출발지인 성법재까지도 주인아저씨의 승합트럭에 신세를 지고 보니, 저 지난달의 청송 택시가사들의 빗나간 양심과는 대조를 이룬다.
성법재 7시 40분이다. 예정보다는 한 시간 정도 늦었지만, 우리가 운전하면서 마무리하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늦지 않을듯하여 다행이다.
출발 10분 후인 7시 50분에 어제 종료한 709.1봉에 오른다. 지금 당장은 가지 못하지만 내연지맥과 비학지맥이 갈라서는 능선을 바라보며 부러워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낙동정맥 정상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지난해 떨어졌다가 쌓인 낙엽 두께가 아직도 만만찮다. 무성할 대로 무성한 숲길사이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할 때마다 ‘홀딱새’는 따라오며 ‘홀딱 벗어, 홀딱 벗어’ 졸라댄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온 산천을 가득 메우고, 햇살도 풍요롭게 활기를 띤다.
출발 한 시간이 넘었을 때 士官嶺에 오른다. 782m나 되는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그런데 山이나 峰이 아니고 嶺을 붙였을까. 무슨 연유인지 궁금하다. 지명 이름의 기준도 없고, 특히 순수 우리 고유지명을 한자음으로 억지 꿰어 맞추는 세상이니 말이다.
이곳 士官嶺에 士官을 붙인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거슬려 올라가나보다. 이곳 가사리를 비롯한 근처 동네에서 많은 무기들을 제조하였는데, 벼슬아치(士官)들 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관령(788m)정상은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여야 되지만, 정맥 코스는 왼쪽인 9시 방향으로 잡아 튼다. 우리가 진행할 정맥 길에는 잡목을 벌채한지가 오래되지 않았던지 시야가 뚜렷하고 경관이 일품이다.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와 소나무 그루 사이로 비치는 산들이 겹겹히 절경을 이룬다.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가며 쉬엄쉬엄, 느림의 미학에 취하다 보니 10시가 되었을 즈음에야 벼슬재에 다다른다.
오전 10시에 도착한 벼슬재 또는 배실재이다. 평평한 안부에는 아름드리소나무가 빼곡하고, 평일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빛바랜 현수막엔 ‘낙동정맥 중간지점’임을 알려준다. 지나온 태백 매봉산까지가 212.9km였고, 앞으로 가야할 부산 몰운대까지가 219.7km 남아 있단다.
벼슬재의 아랫동네인 기북면 오덕리에는 옛 부터 철이 많이 생산되는데, 그 철을 무기로 만들던 곳이다. 따라서 이 고개는 벼슬아치(사관)가 아니면 통행을 제한한데서 벼슬재 또는 사투리로 배실재로 불리는 곳이다. 우린 이곳에 간이 깔판을 깔고, 과일을 깎으며 간식을 취한다. 이곳에는 길을 주의해야 한다. 옛길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어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5분에 벼슬재를 출발하여 무심코 능선을 따르는데 준.희님의 아크릴 간판이 492.4봉임을 알려 준다. 10시 18분이다. 그리고 우린 침곡산을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고도를 높여간다. 11시경에 월성 최공 묘를 지나, 앞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죽을힘을 다해서 치고 오르는데, 마침 정상은 옆길로 우회한다. 어차피 가는 길인데 산행에서 옆길로 우회하는 길이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2시가 가까워지면서 발걸음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침곡산 정상이라 생각하고 겨우 올라 온 봉우리는 701.5m의 전위봉이다. 정상은 아직 400여m 저만큼에서 마지막 남은 땀을 요구한다. 11시 40분이 되어서야 725.4m의 침곡산 정상에 오르고 보니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고, 포항 팔도산악회의 안내판에는 한티재까지 2시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針谷山은 포항시의 죽장면과 기북면을 경계하며 뾰족이 솟아 오른 봉우리이다. 이 산 역시도 뾰족하게 솟아올랐지만 죽장면 입암리에서 보면 골짜기 역시 이 산을 향해 바늘처럼 가늘고 좁아 침곡리라고 부른단다. 300여 년 전 ‘구’씨 성을 가진 ‘구’씨가 먼저 들어와 솥을 만들며 살았다고 하여 구점마을이란 곳이 있고, 이 밖에도 점마을, 점촌, 중바느실의 중마을, 밖바느실의 외침곡이란 마을이 형성되어 침곡리를 이루고 있다.
두 시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도감에 간식은 충분히 섭취하되, 점심식사는 좀 더 진행한 후에 먹기로 하고, 여유를 부려본다. 전망이 기대에는 못 미치나 그런대로 시원한 바람이 있고, 그늘이 있고,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이 있어서 괜찮다.
12시에 뻐근한 다리를 일으켜 침곡산을 출발한다. 훤칠한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나 있는 코스를 비집고 15여분쯤을 내려오니 높다랗게 솟은 송전탑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는 두 봉우리를 향해 다시 고도를 높여 가려는데, 포항 팔도산악회에서 마련한 ‘한티재 1시간 40분’이란 팻말을 지나게 된다.
솔향기는 코끝을 스쳐 가는데, 빛바랜 철쭉꽃은 볼품없이 허접스럽다. 무명봉을 거쳐 무명묘 서너 기를 지나면서 철쭉꽃의 신세도 이제야 한 철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만물은 다 때가 있는 법이고 花無十日紅이라고도 했다.
낙동정맥도 이제 반환점에 들어서고 보니 버럭님은 정맥이 모두 끝나는 내년 3월부터는 1대간 9정맥에서 추억이 서린 곳을 콘텐츠화하여 다시 한 번씩 찾아보잖다.
오후 1시가 넘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676.8m의 태화산에 올라선다. 멍멍이 한 마리가 20m 전방까지 먼저 쫒아와 꼬리를 흔든다. 우뚝 솟은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2층 초소의 직원은 태화산의 절경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태화산은 포항시의 기북면과 기계면, 죽장면의 삼계면이 걸쳐진 봉우리로서 날씨가 좋은 날엔 동해바다까지 보인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은 연무가 살짝 끼어서 아쉽게는 되었지만, 그래도 중국의 황사나 미세먼지도 이곳까지는 오지 못한다면서 끝까지 이 산을 옹호하고 나선다. 잠시의 휴식으로 가쁜 숨을 돌리고는, 코스를 우측으로 꺾는다.
태화산을 출발하여 15분쯤 되었을까. 우측 산등성이가 시원하게 트인 벌목지대에 내려서게 된다. 사방이 후련하게 조망되고 바람도 시원한 명당을 골라 돗자리를 편다. 지겨웠던 산행의 기억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산행의 성취감과 먹는 즐거움으로 40분 가까이 소비한다.
먹거리 반찬이 많아도 걱정이다. 상옥식당에서 싸준 남은 반찬을 땅속에 묻고, 햇반덩어리는 대충 뭉쳐서 짐승 먹이감으로 던진다.
오후 2시를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1시간 여 남은 우거진 숲 속으로 ‘홀딱새(?)’도 함께 따라 나선다. 식후경이어서 일까. healing voice로 들린다. 너무나 아름답고 호소력 있는 소리에 마음의 병도 치료된다는 것이 이럴 때를 한 말일게다. 옛날에도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았다던 먹골재에 내려서게 되고, 이제 한 봉우리만 넘으면 될 것 같았던 봉우리는 또 한 봉우리가 앞을 막는다.
마지막 목적지는 언제나 쉽사리 내어주지 않는 법, 준.희님이 표시한 334봉을 넘어 의성 김공의 묘를 지나니 한티재의 국도가 좌우로 선명하다. 이따금 차량의 엔진소리도 가깝게 들려오기에 이제 다 왔구나 하고 한 숨을 돌린다. 그러나 종착지 표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가야되나보다 하고 터널 위를 막 지나려는데 Y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여기가 이번 구간산행을 종료하는 신한티재이다. 이곳의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민초들이 왕래하던 고갯마루였는데, 지금은 낙동정맥 꾼들이나 넘나드는 고개로 변했다. 한티재 종착지점은 좌측으로 7분 정도 내려가 오후 3시 5분에 도착한다.
한티재 터널 앞, 소공원 잔디밭에 철석 들어 눕는 대원들은 마냥 여유롭고 한가하다. 한티재(266m)는 인근에 한티라는 부락이 있어서 한티재라고 명명한 것이겠지만, 터널이 뚫리기 전의 구한티재라는 곳이 따로 있고, 터널이 뚫리고 난 후의 이곳이 신한티재, 또는 한티재로 통한다.
이른 아침에 미리 몰고 와서 주차해 놓은 차량에 올라 영천으로 핸들을 돌린다. 천년고찰 銀海寺를 탐방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오후 4시 50분쯤이지만, 우리는 은해사 주차장을 지나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사찰 출입로를 배짱 좋게 오른다. 매표소 앞에 도착한 일행은 如此之次 차량 통행을 허락받아 대웅전 앞까지 진입하는 행운을 얻었다.
은해사라는 명성에 비해서 그 규모는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으나, 서기 809년에 창건한 사찰아라고 하니 우선 그 역사만으로도 숱한 애환을 간직한 듯 하다. 수십 번을 소실하고 중창하고 중건하고 중수하고 또 다시 건립하고 신축하고 개금하고 개수하고 수선하고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먼저 山靈閣을 찾아 우리팀의 무사안전을 빌고 절한다.
이곳엔 산령각, 설선당, 심검당, 단서각, 종루·, 화루, 승당, 요사채, 객실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1999년에 완공된 성보박물관이 있다. 특히 대웅전과 보화루의 현판은 추사(秋史)의 글씨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은해사는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찰이지만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생각보다 신자나 탐방객이 많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은해사 개천변에 흐르는 맑은 물과 소나무 숲의 운치를 배경삼아 카메라에 담고, 이번엔 영천시외버스터미널 옆 영화식당으로 달린다. 전국 맛 집의 유명세를 탄 육회요리를 먹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생으로 먹는 고기는 좀 그렇다하면서도 그릇을 비우는 대원들, 소주를 곁들여 건배를 외치고는 상경 길에 오른다.
벌써 저녁 7시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구미를 지나 중부내륙으로 진입하여 영동고속도로를 거치게 되고, 다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하남 만남광장에서 일부 대원들이 하차하고, 다시 판교 외곽도로를 거쳐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11시 5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