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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회] 남한산성 성문(성곽) 일주 산행기
2010.06.19 Views 20 채호기
산행 회원: 김경미, 김형재, 김호중, 박선진, 오상환, 채호기, 천승배, 최명애, 허진 (9명)
일산에서 2시간 걸려 마천역 2번 출구에 도착하니 몇 발짝 앞서 김형재 부회장님이 계단을 오르신다. 서로 부르지 않았지만, 텔레파시가 통해 눈이 마주치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2번 출구에는 천승배 회장님, 오상환 부회장님, 박선진 사장님이 미리 와 계셨다. 곧 이어 허진 사장님과 김경미씨가 도착하고, 최명애 사장님이 좀 늦는다는 전갈이 왔다. 길가에 서서 이런 저런 얘기 중에 링겔 주사를 맞고도 몸이 불편한 가운데 산행에 참석하는 최사장님의 열의에 대해 감탄하는 말이 오고갔다.
도로와 좁은 계곡 식당가를 지나(오는 중에 송파구와 하남시를 가르는 경계선을 넘어왔다) 산행 시작 지점에 다다랐다. 지도에 나오는, 서문에 바로 이르는 3번 코스를 택해 올랐다. 이 3번 코스는 짧고 빠른 대신 서문까지 능선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오르는 도중에 잠시 땀을 식히며 얼린 요플레를 아이스크림 삼아 나누어 먹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이상의 기록은 문화재청의 설명 기록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왔음)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이 흐리고 습기가 많아 땀이 계속 흐른다. 서문에 올라 잠시 땀을 식힌 후, 수어장대에 도착했다. 사진도 찍고 주위를 둘러보고, 푯말의 안내 설명을 읽고 있자니 등산이 아니라 문화재 탐방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성곽을 따라 가파르게 올랐다 내렸다 하며 남문에 이른다. 같이 산행을 하는 박사장님이 힘들면, 남문에서 먼저 내려가서 식당을 잡고 기다리시기로 했으나 계속하시겠다고 해서 동문으로 향한다.
성곽 안으로는 아름드리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향기로운 소나무향과 깊은 그늘 속에 수영을 하는 기분이다. 우리들은 한 무리의 물고기가 되어 시원스레 소나무 사이를 휘감으며 기분 좋게 유영을 한다. 잘생긴 허진 물고기가 연방 “아,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천회장님은 뒤처진 물고기들과 함께 후미에서 공기를 가르며 올라오신다.
북문에 도착, 몇몇 회원들을 배려하여 애초에 계획했던 남문으로의 하산을 포기하고 처음에 올랐던 서문까지 성문일주를 하게 됐다.
마천역으로 하산하는 도중에 식당에 들러 오리와 돼지오겹살과 각종 야채, 안동소주(40도), 맥주, 막걸리, 소주 등으로 건배를 하고, 잔치국수와 청국장에 밥으로 식사를 했다. 이날 저녁의 풍성한 만찬은 오부회장님이 내셨다.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부언하자면, 오부회장님이 저녁을 사기로 한 다음에 그걸 모르고 있던 최사장이 나중에 자기가 사겠다고 했으나 선착순이기 때문에 그 영광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화를 받고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생겼다며, 저녁도 안 먹고 최명애 사장님은 표표히 사라졌다. 최명애 사장님 삐치지 마세요. 다음 주에 또 기회가 있답니다.^^
글 : 채호기/ 사진 : 김형재
마천역에서 출발 서문에서 오른쪽으로 시작하여 성곽따라 서문으로 순환 일주한 남한산성에서 우리들의 모습 27장의 사진갤러리를 감상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