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금남호남정맥
금남 호남정맥 제4구간 (신광재~탑사까지)
2011.07.21 Views 66 慶 雲
금남 호남정맥 제4구간 (신광재~마이산 탑사까지)
☞ 때 ; 2011년 7월 16일 (토) 무더운 날씨에 햇빛, 오후 2시경에 약간의 비, 이후 구름)
☞ 동행인 ; 김유영, 박찬익, 이정일, 임순재, 조은상, 허영심, 홍사룡 (이상 7명)
☞ 산행시간 ; ▶ 총 산행시간, 중리~탑사까지 ; 8시간 30분
...................▶ 정맥 코스, 신광재~탑사까지 ; 7시간 50분
...................▶ 정맥 순수 산행 ; 5시간
...................▶ 휴식, 관광, 식사시간 ; 170분 (2시간 50분 )
6;00 합정역 출발
7;00 남부터미널에서 k씨를 기다리는 동안, 점심(김밥)준비 등으로 늦어짐 (40분 지연)
8;18~9;00 탄천휴게소 아침식사 후 출발 (42분 소요)
10;27~10;30 전북 장수군 천천면 중리마을, 와룡2교 도착 / 와룡휴양림 입구에 자리한 전북 유형문화재 113호인 新光寺는 성수산 자락이 용트림하는 곳에 있다. 臥龍湖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라의 고찰 신광사를 시간상 踏査를 못하고 오른쪽 입구를 지나 와룡 2교에 도착하여 단체 기념촬영을 마치고, 햇빛에 달아오른 좁은 아스팔드 길을 따라 오른다. 20여 일 동안이나 퍼붓든 장마 비가 그치고 난 뒤끝이어서 인지 여간 더운 날씨가 아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25인승 승합차로서는 도로가 좁고, 비포장도로인 데다 군데군데 장마 비에 씻기고 도로가 패어져 도저히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덤으로 40분정도를 더 걸어야 할 판이 되었다. (신광재까지 38분)
11;10 新光峙 / 해발 750m나 되는 곳에 고랭지 밭들로 산자락을 이룬다. 탁 터인 경관, 신광재에 올라서니 바람은 제법 부는 듯 하나 햇빛이 따가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숲이 우거진 본격 正脈 길을 따른다. 원래는 이곳 신광재에서 출발하여야 하는데, 승합차가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는 관계로 부득이 4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11;38~12;03 헬기장 鞍部 高冷地 묵밭 (25분 휴식을 하며 후미를 기다림) / 2~3년은 묵은 듯 한 길속 잡풀을 헤치고 흰 페인트로 칠한 헬기장에서 배낭을 푼다. 나무 그늘아래를 찾아 땀을 훔친 후 後尾를 기다리는 데 20여분 만에 나타난 k씨는 더덕까지 캐려고 했는지 더덕 줄기 2~3개를 보여주며 悠悠自適이다. 1시간을 걷는데 25분이나 늦으면 7시간이면 175분? 그러면 오늘 소요될 산행시간을 다시 체크하고 조정해야 하나?
12;33 聖壽山 (1059.2m) / 全羅北道 長水郡과 鎭安郡사이에 있는 높이 1천59.2m의 산이다.
11;38 능선 갈림길 / 아마 郡界인 듯한 갈림길 인데 좌측으로 내려선다.
12;40~13;20 헬기장 아래 나무 그늘에서 점심 (후미 기다리며 40분 소요) / 뒤 팀을 향하여 구호를 외치니 가까운 곳에서 반응한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 되겠구나 하고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를 않아 먼저 온 팀원들은 할 수 없이 점심식사를 끝낸다. 뒤이어 쫒아온 k씨, 이번에도 무슨 5잎 풀을 뜯어와 자랑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다시 40분을 소요한다.
13;05 숲속 헬기장 / 이젠 내가 후미를 자청하고 재촉을 겸하여 쉼은 짧게 하고 걷는 것은 움직이는 듯 마는 듯 꾸준히 가자고 하는데, 그는 끄덕도 하지 않고 제pace만을 고집한다. 오늘 일정에 차질이 염려된다.
13;47~13;50 복지봉 (1008m?) (12분 휴식) / 앞선 일행들이 후미를 기다린다. 후미가 와서 12분을 휴식하니까, 아마 선두는 20여분은 충분히 쉬었을 테다.
14;56 709.8m 벌목지 / 직선방향으로 드디어 馬耳山이 보이기 시작하고, 정맥 길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15;28~15;48 옥산동 비포장임도 / 제일 후미에서 볼일을 보다가 늦게 도착하여 보니 홍사룡 대원께서 응급히 하산을 요구한다. 그렇잖아도 아침부터 어쩐지 顔色이 피곤해 보이는 것 같더니 오늘은 무리가 되나보다. 제 빠르게 비상 약통을 꺼내 돌팔이 침쟁이들의 시술이 시작된다. 12손가락 끝에서는 선홍 빛 피를 보고난 후에 기사를 호출한다.
더위 때가 되면 유달리 힘들어 한다는 김유영 대원을 대동시켜 옥산동으로 하산 한다. (20분 소요)
홍사룡 대원은 등산경험이 풍부한 30년 노장이므로 안심은 해 보지만,....... 더 이상의 無脫을 기원하며, 마지막 남은 코스에 피치를 올린다.
16;26 가름내고개
17;18~17;30 반월고개 (12분 휴식, h씨 근육경련) / 30번 국도를 건너 고구마 밭둑을 걷는데 땅 주인 되는 듯 한 부부가 채소를 가꾼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덮고 비축한 물은 딸랑딸랑, 혹시나 하여 그들에게 마실 수 있는 물 좀 없느냐고 물어보니, 그냥 밭두렁 골에 흐르는 물을 마시란다. 비가 온 뒤여서 깨끗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데, 그래도 밭두렁에 흐르는 물을 마시기에는 좀처럼 내키지가 않는다.
입산하자마자 멍석을 깔아 놓은 듯한 그늘 한 곳이 있기에 한모금도 채 되지 않은 물을 꺼내 입술만 축여 본다. 곧이어 합류한 h공주는 다리 근육경련이 일어나 조은상 대원에게 시술을 받았다고 하며, 엄살을 늘려 놓는다. 글쎄요.
17;25~18;35 갈림 길 (10분 y알바) / 눈앞에 마이산이 가려 집중이 散漫한 곳, 갈림 길이다. 좌측으로 진행해야하는데 아무래도 뒤 팀의 위치가 미심쩍어 ‘아야야......’구호를 보내니 아니나 다를까, y대원이 알바를 한다.
17;53 東馬耳峰 / 언제 보아도 마이산은 예사 산이 아니다. 우람하게 솟아 오른 마이산 아래, 여간해서는 햇빛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듯한 기세로 하늘을 찌른다. 陰散한 기운까지 감지하며 폭우로 패어나간 돌 뿌리를 걷어차고, 돌덩어리에 미끄러지며 조심조심 高度를 낮춘다.
18;10 銀水寺 / 원래의 사찰이름은 상원사, 정명암 등으로 전해지기도 하나, 은수사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면서 물을 마시고는 은(銀)과 같이 물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전해진다. 태종13년(1413년)에 임금이 南行하여 10월11일에 國行祭를 올렸다는 ‘馬耳山神祭’壇을 지나고, 나는 박찬익 대원과 함께 우선 山神堂에 들려 모든 대원들의 안녕과 정맥 완주의 성공을 祝願한다. 그리고는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청실 배나무아래 섬진강 발원지란 간판이 있는 우물로 가서, 銀水 두어 바가지를 퍼서 단숨에 들이킨다.
이어 法鼓 앞에서 북채를 힘껏 쥐고 북 중앙을 향해 힘껏 세 번을 두드린다. 둥, 둥, 둥...... ‘자기야 말로 자신이 진실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이 의지할 곳 (自修自行, 自心不亂)이란 의미에서, 즉 나의 주인은 내 자신이고, 내가 의지 할 곳도 내 자신이라는 것을 되새겨 본다. 결국은 정맥종주도 내 자신이 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다잡아 보며, 더불어 우리 정맥 팀의 건강증진과 無事종주를 나름대로 기원하는 데, 임순재 총무와 박찬익 대원은 아예 등산화까지 벗어 놓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法鼓소리에 맞추어 보조를 함께해 주는 듯하다.
어느덧 태양도 숫마이봉 뒤로 숨어들어 열기를 잃어가고, 매점 점포를 지키던 보살 아줌마도 귀가를 서두르는지 문 닫을 준비를 하기에 얼른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곳 특산물인 청실 배 즙 다섯 컵을 주문하여 각자 마시며 열기를 식힌다.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태극전을 관람하고 단군상 좌측 說話의 내용을 나름대로 설명하며 탑사로 향한다.
18;40 탑사 / 峽谷, 좁은 공간에 山勢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탑들은, 조선후기 임실출신의 李甲龍이라는 사람이 25세 때(1885년) 銀水寺에서 솔잎으로 生食을 하며 수도정진 하던 중, 꿈에서 衆生을 구원하라는 神의 계시를 받아 탑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儒佛禪에 바탕을 둔 龍華世界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衆生을 求道하기 위해서 일까.
조선 太宗의 둘째 아드님인 孝寧大君의 16대 손으로 태어나 16세 때 부모를 여의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친 후 속세를 떠나 전국을 만행하다가 마음을 정한 곳이 바로 이곳 마이산이라고 한다.
남자산이라고 하는 지리산에서 200리 길, 여자산이라고 하는 계룡산에서 200리 길, 그 중간에 위치한 마이산령 夫婦봉우리에 입지를 정한 그는 苦行을 자처하며 疊疊山中, 오직 산 하나로만 대화를 하고, 수도에 정진하면서 30년간 108기의 탑을 쌓아 108번뇌의 해탈을 염원했음인가.
우리는 저물어 가는 날씨에 上京 시간을 감안하여 탑사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 촬영을 마치고 운전기사를 탑사 남부주차장으로 호출한다.
19;00 탑사 주차장 입구 (은수사에서 탑사 등산로 입구까지 50분 관광)
19;40 남부주차장 / 中途 하산했던 홍사룡, 김유영 대원을 다시 만나는데, 홍사룡 대원은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함인지 눈을 감고 기척도 없다. 적이 걱정이다.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한 ‘모시골식당’까지 와서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임순재 총무를 대동하고 진안 보건소 응급실을 찾는다. 그리고는 흑돼지 삼겹살에 간단한 소맥으로 금호남정맥 제4구간을 마무리하고 상경 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