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

금남 호남정맥 제6구간 완주(오룔재~주화산~원불교훈련원) 마지막 구간

2011.09.20 Views 75 慶 雲

금남 호남정맥 제6구간(오룡고개~주화산까지)과 호남정맥 제1구간
(오룡고개~주화산까지, 주화산~원불교훈련원까지)

.........................날짜 ; 2011년 9월 17일 (맑음)
.........................함께한 사람들 ; 김유영, 박찬익, 임승규, 이정일, 장정화, 조은상,
...............................................최태경, 허영심, 홍사룡 (이상 9명)
.........................총 등산시간 ; 8시간 (금남호남정맥 3시간 15분+호남정맥 4시간 45분)
.........................휴식,식사 시간 ; 3시간 5분(금남호남정맥에서 80분+호남정맥에서 105분)

06;00 합정역 2번 출구 출발
06;18~06;35 남부터미널 출발
08;12~09;45 여산휴게소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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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5 오룡고개 / 09시 25분에 도착, 점심 김밥을 배당하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준비운동을 한다. 대미의 금남 호남정맥 마지막 제6구간, 처음엔 아스팔트길을 따르다가 10분 후 좌측 개천을 뛰어내려 본격 능선길을 찾아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고도를 높여간다. 출발 40분쯤 후 가파른 깔딱 고개를 딛고 올라서니 622봉? 온몸은 벌써 땀으로 범벅이 된다.

19;35 장구목재 / 진안문화원에서 호남.금남정맥 ‘장구목재’란 표시 글자를 백상지에 프린트하여 코팅을 한 다음, 숲 속 소나무 한그루에 동여 놓았다. 주화산 3.5km, 오산리재 1.0km도 작은 글자로 안내 되어 있다.

10;53~11;03 휴식 / 깔딱 고개를 오르는데 뒤 팀들이 좀 떨어진 것 같아 숲속에서 잠시 휴식

11;05 오산리재 / 휴식을 취하고 출발 하자마자 오산리재 표시를 이번에는 참나무에 매어 놓았다. 아마도 왼편으로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오산리인가 보다. 주화산 분기점 2.5km, 세동봉암고개 2.0km 이다.

11;25~11;40 조약봉(?)휴식 / 주화산 3정맥 분기점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듯 한 봉우리에서 모두가 합류한 다음, 운전기사에게 주화봉 위치를 유도한다. 출발할 때 막걸리 2병을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모래재 위 주화산 3정맥 분기점으로 배달을 부탁하였기 때문이다.

12;00 細鳳林道開通紀念植樹 碑 / 옆에는 주식회사 씨미트에서 자연훼손 방지 공고 표지판을 큼지막하게 세워 놓았다. 실제 정맥을 뛰는 산꾼들은 자연을 훼손시킬 시간이 없어서도 못할 텐 데, 공연히 설치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론 얼치기 산행꾼들이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였으면 볼성사나운 경고표지판까지 세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공고판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그러나 우리는 주화산 3정맥 분기점에서 금남호남정맥의 완주 기념과 호남정맥 출발 시산제를 올리기 위해 마지막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12;05~13;00 주화산(564m)3정맥 분기점 / 금남호남정맥은 전북 장수에 있는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 나와 약70km에 가까운 마루금을 만들어 놓고는 이곳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분기한다.

우리나라 산줄기들은 山經表에 근거를 두고 모두가 강 유역을 기준으로 한 분수산맥으로서, 하나의 大幹과 하나의 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갈라져 나온 13개의 正脈을 이룬다.

지난겨울에 금남정맥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올해 들어 금남호남정맥 제6회 만에 다시 이곳에 선 것이다.

백두대간과 정맥을 항상 함께했던 박찬익 대원은 오늘따라 선두로 먼저 도착하여 뒤이어 올라오는 모든 대원들에게 유기농 사과를 잘라 기분 좋게 배분하고, 자칭 마당쇠 임승규 님은 홍초와 빙수를 적당한 비율로 칵테일하여 정성스럽게 가져온 시원한 음료수를 대원들에게 일일이 제공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항상 용기를 주었던 조은상 님은 주화산 정맥 분기목을 안고 감회에 젖는 모습이다.

모래재에서 막걸리 2병과 종이컵을 사서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이곳까지 심부름한 운전기사 분도 기분 좋아 한다.

우리들은 깨끗한 보자기를 땅에 깔고 깔판을 편 다음, 모든 배낭들을 제수상 뒤로 몰아 놓고는 각자가 간식으로 가져온 과일과 육포를 제물로 올려놓으니 번개 제사상 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차림이다.

금남호남정맥의 완주제를 겸하여 호남정맥 시산제를 올리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호남정맥의 무사완주를 축원하며 제를 올린다. 모두가 정성과 성의를 다하여 술잔을 따르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하여 산신제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1시, 다시 호남정맥 제1구간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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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1구간(주화산~원불교훈련원까지)

13;00 주화산, 3정맥 분기점 출발 / 누구는 호남정맥이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로서, 서쪽을 해안의 평야지대로 가르고, 동쪽은 남원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대로 분류하여 농경과 산업, 그리고 다른 생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장흥의 龍頭山에서 하동의 섬진강 하구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줄기가 지리산에서부터 김해의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져 洛南正脈을 형성하고, 우리나라 남부 해안 지방을 동일한 생활 문화권으로 형성하였기 때문이란다.

13;45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만들어 놓은 삼각점 / 살짝 오르막, 국토해양부에서 만든 삼각점이 아니고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그렇다면 이곳에 석탄광산이 있었다는 걸까.

능선에서부터 한참동안 한길이 넘는 산죽지대를 통과하는데, 이번엔 강아지를 앞세운 연인을 만난다. 연인, 부부? 대부분이 부부가 아니고 연인이라는 데 의견을 일치하였기 때문에 연인으로 표기한다.

14;05~14;40 휴식 / 한낮의 폭염은 바람조차 잠들게 하나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골짜기 아래에서 쳐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저린 등산 꾼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다. 한참을 휴식한다.

15;00 웅치전적비 안내판 / 초반부터 짱아줌마는 철조망 울타리가 나오면 웅치가 가깝다고 했는데, 전망이 터진 묘지를 지나면서부터 철조망 울타리를 만난다. 그리고 곧 웅치전적비 안내판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웅치(熊峙)가 능치(能峙)로 잘못 표기되었다.

15;02 임도 / 새로 다듬어 만든 임도로서 승용차가 다니기는 어려울 듯하다.

15;20~15;35 휴식 / 다시 능선봉 앞 가파른 마루금에서 휴식을 취하며 모두가 함께한다.

15;44 깔끔하게 벌초한 가족묘지를 지나고

15;45~15;50 웅치전적비 /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곳으로. 1592년(선조 25)인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이 벌였던 격전지로서 1979년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운 비이다.

충남 錦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2진으로 나뉘어 전주를 공략하자 광주 목사 권율(權慄)이 이치(梨峙)에서 적의 1진을 맞아 격파하였다.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鄭湛)과,·해남 현감 변응정(邊應井),·나주 판관 이복남(李福南)이 이끄는 의병은 웅치에서 적의 2진을 맞아 격파하였으나, 다음날 새벽 왜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공격해옴으로써 웅치 수비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후 승리한 왜군도 많은 희생자와 타격을 입어 전주성 주위를 맴돌다가 물러갔는데,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성에 탄복하여 조선군의 유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조선의 충신 의사들의 영혼을 조상하노라(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쓴 표목을 세웠다. 는 곳이다.

관광객 남녀 5명이 碑 주위를 맴돌다 너무 더워 그늘로 피신하고, 우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막 내려서니 곧 곰재에 이른다.

15;53 곰재 / 곰재와 웅치 곰치를 구분하여 사용하는지, 표시가 잘못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일관성이 없다. 승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는데, 승합차 다니기에는 힘들 듯한 길이다. 그리고 길을 건너 가파른 능선봉을 치고 오르는데, C형은 목적지까지 얼마쯤 남았느냐고 10분도 되지 않아 또 물어 온다. 대답은 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30분 정도, 그만큼 이제 지쳐가고 있음이다.

왼쪽으로는 군데군데 ‘흑염소 방목지’ ‘고성방가 금지’ ‘전기감전 조심’이란 경고문을 흉물스럽게 설치해 놓고, 자연석에도 붉은 글씨로 표기하여 놓았다. 아무리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몰염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얹잖다.

그런데 봉우리가 하나인줄 알았는데 서너봉을 더 넘고서야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선다. 그런데 이번엔 ‘고사리 밭 출입금지’라고 또 경고글씨를 설치했다. 이거야 참......

16;35 오두재 / 아무 표시도 없지만 오두재임을 확신하고 오르막을 치고 목적지까지 직행하다가 바위능선을 막 내려선다.

16;40~17;30 삼거리 안부 / 풀 섶 안부에 초라하지만 이정표에는 분명 원불교훈련원 0.7km, 정상 1.7km, 헬기장 1.7km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팀이 오기까지 50분을 기다린다. 공주는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말다 한다며 익살(?),엄살(?)을 부리고 하산한다.

항상 맨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한 홍사룡 님은 앞에 예비 장모님을 앞세우고 조심조심 오후 5시 반에야 이곳에 닿는다. 그동안 산 모기들이 떼로 몰려와 얼굴, 팔, 심지어 옻 위에서도 사정없이 물어 뜯어 가렵고 화끈거린다.

17;45 원불교훈련원 / ‘萬能이라 萬德이오, 萬德이라 如來니, 如來의 慈悲가 東天의 太陽이어라.’ 훈련원 본관 표지석 뒤편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비문에 있는 글씨이다.
호텔만큼이나 큰 효소선원아래 공용 주차장에서 대미의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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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20;30 임실, 관촌에 있는 원조, 두부촌식당(642~0634) / 이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하여 특별히 참석한 최태경 명예회장의 스폰스이다. 전라도 특유의 진수성찬과 푸짐한 서빙 아줌마, 삼겹살, 맥주, 소주를 마시는데, 오늘은 왠지 사양하는 이도 없고, 기분도 괜찮아 저녁 8시 30분에야 승합차에 오른다.

23;05 서울 남부터미널 도착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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