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낙남정맥 : 무학산 자락에서 마창진을 굽어보며
일 시 : 2일차-2014. 2. 23(일요일)
참석인원 : 이정일, 부길만, 박종관, 박찬익, 구본영, 황성자













4시50분에 맞춰둔 모닝콜 소리에 잠시 깨었다가 다시 눈을 붙인다. 천근만근 무건 몸은 이내 깊은 숙면 속으로 빠져 든다. 쿵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5시45분, 미친 듯 빠른 속도로 양치를 하고 세수는 건너뛴 채 썬크림만 바르고 식당으로 향한다.
손님에게 새벽밥 지어주는 건 개업이래 처음이라며 많은 공치사와 함께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주신 주인장에게 다양한 복을 건네 준다.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녀석! 어제도 그리 혼을 빼놓더니 여지 없이 달려와 애교를 부리는 ‘선’이!’ 화단 뒤로 숨었나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장난질이다. 벌렁 누워 배를 보이고 잘근잘근 손가락을 깨무는 요 녀석 데려가고 싶다. 사람이라면 이리 한결같이 웃게 할 수 있을까. 녀석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본다.
7시쯤 한치재에 도착한다. 어제 산행할 때 건너편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이미 복선을 깔아 각오를 다지게 했던 산! 벌떡 서 있는 그 모습은 능선까지의 높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초반부터 올라 치는데 오곡재부터 따라 왔는지 가릉 거리며 울어대는 까마귀떼의 모습이 사납다.
총무님 말처럼 까마귀도 예전엔 저리 울지 않았는데 세상이 변해 퇴환지 진환지 그 소리가 분명 달라 진 듯 하다. “까아~~~~악” 창공을 가르며 찢어질 듯 소름 돋우며 날카롭게 울어대던 소리가 지금은 마치 게으른 강아지 짖어대듯 귀차니즘에 빠져 대충대충 우는 것 같다.
고도를 올라 칠수록 말이 없어진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 걸까. 가쁜 숨소리만 깔닥고개 위에 무겁게 내려 앉는다. 쉬지 않고 한 시간째 오르막과 사투 중이다. 지겹고 고독하다. 하늘이 보이기는 고사하고 바람소리조차 잠잠하다. 몽롱한 정신은 어디론가 내달리더니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단잠을 청하고 있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걷지 않는다고 산하가 달라질 테냐, 주저 앉으려는데 투정하듯 안도하듯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 고갤 들어보니 일행들이 능선에 올라 욕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 박회장님 말씀처럼 죽을 것 같을 때쯤 살길이 보이는구나.
‘광려산 삿갓봉 702m!’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고통스런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니 복닥거리는 세상살이의 지친 모습들은 저 너머에서 한 점의 부질없음으로 스러진다. 한발 물러선 채 바라보는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선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좀 전의 기억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구미호 언니가 차 한잔 하고 가자는 걸 회장님께서 광려산 정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거기에서 여유 있게 마시자고. 삿갓봉 좌측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산행객들의 발걸음을 우회하도록 유도 한다.
몇 개의 암릉을 지나 사방으로 펼쳐진 비경에 정신을 빼앗기며 걷다 보니 광려산 정상이다. 대원들 살뜰하게 챙기는 구미호 언니 배낭은 샘솟는 물인 듯 간식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박회장님 감탄사 연발이시다.
대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진달래 군락지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진달래 군락지, 머지않아 온 산이 붉게 물들어 갈 텐데 피는 꽃 못보고 이곳을 지나야 함이 못내 서운타. 같은 산맥을 넘으면서도 지형에 따라 기온 차가 심하다. 봄인 듯 옷 한 겹 벗어 던지면 이내 겨울바람이 불곤 한다.
특이하게도 이산엔 낮은 키의 소나무들이 많은데 마치 분재를 옮겨다 놓은 듯 절제된 모습이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 속세를 굽어보는 듯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한 그루 작은 소나무는 그 옛날 탐관오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한탄 같기도 하다.
사르륵 사르륵 온몸을 스치는 갈대들, 금빛 갈대 숲 사이를 비집어 들어가는 대원들 모습이 영화의 디졸브 기법처럼 감실거리는 햇살 속으로 사라져 간다. 광산먼등을 지나 걷는 길엔 아직도 진달래 군락지가 끝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꽃을 못 봄을 아쉬워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에 취해 이 길을 걷고 있겠지..
처음에 고도를 올라 칠 때를 제외하곤 내내 수려한 경관이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한다. 멀리 보이던 산불감시초소에(윗바람재란 표시석이 서 있다) 당도하니 민 소매에 근육질 팔뚝이 건강함을 대신하는 요원, 살짝 섹시함이 보인다. 사진 찍지 말라 했건만 버릇처럼 이미 셔터를 눌러버렸다.
살뜰하게 안내도 해주고 뜨거운 차도 기꺼이 내어 주는 친절함에 대원들 간식 보따리 풀어 헤친다. 날이 좋을 때는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이 되는데 운무에 가려 너무나 아쉽다고.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마창대교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한 후 바람재 넓은 안부로 들어서니 팔각정이 보이고 후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산제 뒤풀이를 하는 무리들이 보인다. 구미호 언니 어느 틈에 달려가 넉살 좋게 떡이랑 과일을 챙겨 든다. 언니의 넉살과 언변이 산행이 거듭 될수록 일취월장(이럴 때 써도 되나?^^)이다.
쌀재 고개는 개인 사유지인 듯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사냥개 경고문까지 붙여져 있다. 우회해 돌아간다. 임마농원 좌측으로 150여미터쯤 돌아가니 등산로와 들머리 표지판이 보인다.
대곡산을 향해 오른다. 마치 실 뱀이 지나가듯 가늘게 보이는 고속도로와 장난감처럼 보이는 마산시가지 전경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의 높이가 만만치 않음을 증명한다. 깊은 산중에 올라서고 보니 숨바꼭질 하면서 술래에게 들키지 않은듯한 묘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 없는 산도 유명한 산도 그저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일 뿐……
햇살 넉넉히 내리쬐는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푸짐한 먹거리들을 꺼낸다. 와우! 대박인데..사과,빵,고구마,계란,커피 거기에 시산제 일행에게 얻어온 떡, 과일, 대추들까지 성대한 만찬에 대원들 얼굴에 웃음꽃 폈다.
무학산이란 이정표를 뒤로 하고 걷는다. 이십 여분 쯤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부교수님과 박회장님 구미호 언니는 능선을 향해 오르고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박총무님 뒤에서 처져 걷다 회장님을 따라 아래 능선으로 걷는다.
나도 지름길인가 싶어 오르던 길 접고 후다닥 아래로 달려 내려가니 저만큼 정자가 보인다. 자산동 약수터다. 톡’ 쏘며 갈증을 풀어주는 약수 한 모금, 다시 힘을 낸다. 무학산을 향해 오르는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정상의 모습이 아련하다. 한국100대 명산에 속한다는 그 모습이 궁금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위치한 무학산은 767m의 높이로 옛 이름은 풍장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마산지역을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낙동강 물너울에 부딪혀
날아오는 빗살 등진
그림자
무학산 자락위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 학
슬프도록 고고한
춤사위에
구름 밴 하늘가
힘겹게 밀쳐낸 겨울을 비집어
드는 햇살
물너울에 부딪혀
되돌아가는 바람소리
2014. 2. 22 무학산 자락에서 마산~창원을 굽어보며 생각나는 대로 써둔 낙서 한 조각
시원하게 펼쳐진 마산시가지 전경과 희미하게 보이는 다도해 풍광을 굽어보며 마지막 남은 코스를 정리해 본다. 서마지기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마재고개 가는 길을 물으니 제각각 다른 길을 알려준다.
회장님께서 산행객들의 정보를 참고로 다시 꼼꼼하게 지도를 살피시며 대원들을 이끄신다. 때이른 봄날의 아련함에 취했던 무학산 정상의 모습도 잠시, 가파른 내림길이다. 응달에 쌓인 눈은 설 녹아 미끄럽고 위험하다.
언제쯤 나오려나 고대하던 마재고개 이정표가 보이고 이십여 분만 내려가면 된다는 회장님 말씀에 생기가 도는 대원들, 회장님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시고 대원들도 마음에 여유가 생겨 농담까지 한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매달아 둔 막대는 무엇에 쓰는 용도일까 던진 말에 박회장님께서 지나가다 목매달으라고 만든 것 같다 하셔서 다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빵’ 터졌다. 가끔 툭’ 던지시는 한말씀의 강도가 세다.
회장님의 암호다. 그어져 있는 선을 따라 내려 가니 회장님, 나무둥치에 기대 앉아 대원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질주하는 차들의 행렬과 민가의 모습이 오늘의 산행이 끝났음을 말해 준다. 덤프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가건물을 지나 고가아래를 통과하니 자갈밭이다. 네비상에서는 마재고개라며 더 이상의 진행을 막는데 장기사님과 만나는 지점이 엇갈려 마재고개를 두고 한참을 헤매다 만난다.
문화탐방 할 시간은 턱도 없고 우선 배가 고픈지라 지난번에 들렀던 마산어시장 ‘감포횟집’을 찾아 든다. 잊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언니, 고맙단 말을 열 댓 번은 하시나 보다. 짧지 않은 산행의 고단함을 막걸리와 소주로 달래 본다. 무리가 되셨는지 박회장님 코피를 쏟으셨다.
녹록치 않은 산행에 대원들을 이끄시며 맘 고생을 하신 회장님! 성찬까지 베풀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
“정말 잘 먹었습니다”
사람 좋으셔서 고생을 하시고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장기사님과 작별을 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맡긴다. 소등과 동시에 모두 단잠에 빠져든다. 낙남정맥도 어느새 후반부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