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지난 일을 되짚어보기엔 너무도 빠른 세상인가.
이정일 회장님의 산행기록을 참고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여느 때와 달리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분노와 아픔에 온 국민이 비탄에
그리고 절망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에 빠져 있는 시기에 산행을 나선다는 게 맘이 무겁다.
이번 산행은 그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으로 침묵과 고행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취나물에 된장을 발라 쌈밥으로 준비하고
유부초밥 몇 개를 더 준비한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새벽 6시 10분 창원 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여늬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조용하고 참잠하다.
선산휴게소에 정차한 틈을 타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새벽에 섬광처럼 지나는 생각 붙잡아 준비한 취나물 쌈 밥 향이 그윽하다.
잘록한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초록빛 향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산천은한 폭의 수채화다.
창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 미리 나와 대원들을 기다려 주시는 장 선생님 따라 걷는데
목 부분이 허전하다.
모자를 두고 내렸다.
후다닥 달려서 정신없이 이 버스 저 버스 오르내리다 모자를 찾는 나,
점점 심해지는 몹쓸 놈의 건망증.
칠칠치 못한 내게 다들 한마디씩 던진다. 냉정고개를 향해 달린다.
냉정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 걷다 우측 농로를 따라 걷는다.
남해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니
이회장님과 부교수님께서 열심히 무언가 들여다보신다.
국악연수원(무속전수관)이란 입간판이 선명하다.
진정한 무속인을 배출하기 위한 곳이라는데
서울에도 스무 개 정도가 학원처럼 운영이 되고 있다 한다.
국악을 통하여 혼을 부르고 사주팔자를 들여다보며 내림굿까지 전수한다고 한다.
부드러운 속살을 터트리며 새 생명을 틔워 낼 준비에
한껏 설레어 있는 황토밭을 지나 잠시 서성인다.
갈 곳이 어디멘고.
이회장님 밭가는 농부랑 한참이나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더니
대원들과 다른 길로 접어드신다.
그사이 황새봉 이정표를 발견한 대원들은 행여
회장님께서 알바 하실까 염려하며 신호를 여러 번 주고받는다.
임도에서 회장님과 만나 산길로 진입한다.
우측으로 꺾어 올라가니 송전탑 뒤로 마루금이 시원하다.
수다스런 종달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초록빛 물결은 일상에서 채워졌던 수갑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친다.
폐부를 타고 들어오는 숲의 향에 세포들이 반응한다.
산중턱에 자리한 평상에 앉아 구미호 언니표 커피를 팔아주며 잠시 숨을 고른다.
옷깃을 여며야 할 장도로 바람이 차다.
막바지에 접어든 동행의 길, 수십 년 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살다 산행이란 인연으로 만나 걷고 있는 이 길,
언제쯤 또 다시 걸을 수 있으려나 새삼 가슴이 뜨거워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다시 오는 봄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 납니다
살아있구나 느끼니 눈물 납니다
기러기 떼 열 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황새봉에 올라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지극정성 구미호 언니 표 찰밥에 갖은 나물에 묵까지 대원들 환호성 터진다.
힘든 산행 길을 늘 행복하게 만들어준 언니의 도시락은
산해진미 그 어느 것과도 비할 수 없으리라.
‘준.희님도 고마워요. 지칠 무렵이면 늘 비타민처럼 응원을 해주는군요’
추모공원이 가까워질수록 스테인리스(stainless) 물 잔을 매달아 둔 것이 눈에 많이 뛴다.
목마른 망자들을 위한 배려일까.
내삼계곡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올라가니 추모공원이다.
산자락아래 펼쳐진 저 풍경,
죽은 이들이 누워있는 공원 반대편 골프장엔 살아 있는 자들이 찰나의 놀이에 빠져있다.
생과 사의 공존이 더욱 가깝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쇠금산 가는 길에 꽃비가 내렸다.
하늘을 향해 돌아누운 꽃비가 처연하다.
바람 끝을 붙잡고 매달리는 모습이 한스럽다.
쇠금산 정상에 올라 산자락을 굽어보니
깎여진 산중턱엔 끝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들어찬 묘지들이 서글프다.
곳곳에 설치된 운동시설, 회장님 훌라후프에 꽂히셨다.
돌아가는 허리는 청춘이 울고 갈 정도로 유연하시다.
만능스포츠맨으로 인정합니다.
‘넌 누구냐?’
불현듯 뒤돌아 본 묘지, 다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산 자들이여! 돌아갈 곳 어드멘고…..
낙원공원묘지를 벗어나 골재공장 성원ENT를 지난다.
오늘 산행은 송전탑을 따라서 걷기만 하면 된단다.
채석장 먼지와 굉음을 피해 후다닥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 길이 이상하다.
송전탑은 저 멀리로 보이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송전탑과 상관없는 평범한 오솔길이다.
다들 느낌은 이상한데 길이 좋으니 무작정 걷는다.
반대편에서 오는 이에게 길을 물으니 우린 한참이나 알바 중이었다.
여긴 경운 산이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저 반대편에 있는 송전탑을 따라 걸어야 한단다.
알바라 생각하지 말고 다들 뜻밖의 선물이라 생각 하잔다.
무한긍정의 대원들!
곧바로 수직으로 하산해 대로에 내려서 장 선생님께 위치를 알려주고
박 회장님은 지인분과 연락을 하신다.
SK주유소 앞에서 기다리니 오늘 우리들의 행복한 저녁만찬을 책임져 주신다는
박회장님 지인 ‘엄지교육 대표 이인태님’이 먼저 도착해서 식당위치를 알려 주신다.
진영읍에 위치한 ‘신라가든’을 향해 두 대의 차가 달린다.
넓고 듬직한 도시 창원과는 달리
소규모의 공장들이 밀집한 이곳은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다.
십 여분 쯤 달려 도착한 신라가든은 이곳의 명소답게 실내분위기부터 남다르다.
나무로 만든 조각품들과 시조가 풍류를 즐기는 쥔장의 면모를 들여다보게 한다.
황송하게도 한우갈비로 저녁을 내주시는 이인태 대표님,
온화한 인상에 겸손함이 묻어나는 선비를 닮으셨다.
‘정말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박회장님의 능력도 탁월하십니다.’
가는 곳마다 기꺼이 진심을 다해 만찬을 베푸시는 지인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잘 사셨다는 증거이다.
몰디브모텔에 여장을 푼다.
활기가 넘쳐야 할 주말의 시내풍경은 다소곳하니 잠잠하다.
부교수님께서 야식으로 사오신 맥주와 간식은 제 맛을 잊어버리고
다들 먹먹한 표정으로 연이어 보도되는 세월호 사건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미안하구나 아가들아. 어른이라서 미안하구나. 어른인 내게 아니 우리들에게 휘초리를 들고 싶구나.’
안타까움은 기적을 일어나기만을 바라며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2일째 -
산 행 길 : 망천고개~신어산~생명고개
날 씨 : 맑음
적당히 피곤했는지 모처럼 단잠을 잤다.
짐을 챙겨 들고 어제 봐둔 전주콩나물국밥집으로 찾아 든다.
소란스럽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 때문인가 뭐지?.
“뭔데?’ – 남자/ “뭐라 카는데?”-여자 1 /“조용히 해라”-여자 2
별다른 내용 없이 싸우는 젊은 남녀들, 조막만 한 어여쁜 얼굴에 개미허리, 게다가 글레머러스 한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늘씬한 아가씨 두 명과 잘생긴 청년 한 명이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고성이 오간다.
청년 탁자를 친다.
술병을 깬다.
여자 1 술병을 깬다.
여자 2 탁자를 뒤엎는다.
손님들 놀라서 달아난다.
바닥엔 국밥이 쏟아지고 깨진 술병들이 어지럽다.
남자 탁자를 걷어차니 탁자 다리가 부러진다.
여자 1 육두문자 날린다.
여자 2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간다.
그리곤 다시 엉켜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참 이상하다.
저 정도면 손찌검이 오가고도 남을법한데
마치 법을 알고 각본에 있는 싸움을 하는 것처럼 두 손은 정말 얌전하다.
그리곤 싸우다가 카운터에 와서 ‘죄송합니다. 다 변상하겠습니다’
그리곤 손님들을 향해 ‘죄송합니다’ 또 싸운다.
역시 내용이 없다.
말리는 사람이 뒤집어쓰는 세상이라 대원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나온 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서빙 하던 아주머니가 무섭다고 우리 곁으로 달려든다.
다급하게 밖으로 달려 나가는 주방아주머니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게 와 아무 일이 아닙니꺼?. 술병 깨고 소리 지르고 탁자 넘어가고 손님들 다 도망가고 난리도 아닌데 와 이게 별일이 아니냔 말입니더. 제발 빨리 좀 와 주이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한참 만에 도착한 경찰들은 수수방관, 원래 저래야 하는 건가?
법을 잘 모르니 속이 터진다.
싸우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찍고는 순찰차에 태운다.
여러 가지로 홧병나게 하는 세상이다.
누구의 부인, 누구의 며느리가 될지 참 어이없고 개탄스럽다.
장선생님께 싸움구경 한 이야기를 전하니 경상도 사람들의 좀 급하고 다혈질이라
보통 그렇게들 많이 싸운단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싸우는걸 보면 간지럽단다.
간지러워 죽어도 그리 험하게 싸우는 것보단 백배 낫지요.
시끄러운 세상 벗어나고 싶다.
망천고개를 향해 걷는다.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더니 뒷이야기로 바쁘다.
예쁜 애들이 싸우니까 더 볼만했다나 어쩐다나.
놀란 탓인지 오름 길이 벅차다.
혼자서 뒤처져 오르는데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구토가 난다.
먼저 가시라 해도 회장님께서 끝까지 기다리며 챙겨 주신다.
정맥 길을 걷다 보면 우리나라 산하가 참으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운 산하를 시도 때도 없이 파헤치고 깎아내고 끊어내는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난다.
개발이란 명분하에 산하를 파헤치는 정책보다는
끊어진 맥을 복원하는 정책을 편다면 얼마나 좋을까.
송전탑을 따라 올라가는 길엔 봉우리 하나가 통째로 벗겨져
맨 살에 뻘건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있다.
몸살을 앓는 산하,
제발 그만 좀 파헤치고 백 년을 내다보는 지혜로 개발을 하길 바랄 뿐이다.
섭리를 거스르면 응당 그 대가를 치러야 하거늘 어찌하여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지.
파헤쳐진 봉우리를 개탄하며 포장된 도로 맞은편 산으로 향한다.
수직으로 벌떡 일어선 채 도도하게 버티는 깔딱고개 중턱에서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숨이 가쁘다 못해 식은땀과 구토증상이 인다.
천신만고 끝에 산봉우리에 올라서 짐 팽개치듯 몸을 던진다.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신!
갖은 번뇌에 고통스럽던 기억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두릅이 지천이다.
두 회장님께서 두릅을 따서 배낭에 넣어주신다.
나밭고개를 향해 가는데 띠지도 뭣도 없다.
촉수를 제각각 펼쳐 들고 내비게이션까지 작동하며 길을 찾아 나선다.
과수원 길에서 멈춘 내비게이션을 끄고
무작정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회장님은 다른 길로 접어드신다.
알바고 뭐고 구미호 언니랑 난 지천으로 널린 쑥에 홀려 정신 줄 놓는다.
기다려도 회장님은 소식이 없다.
어디로 가신 걸까~대원들이 목소리 합쳐 회장님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무응답!
과수원을 지나 마을로 접어든다.
어느 집 마당 작은 공터에 소나무가 서 있다.
소나무 둥치에 매달린 글귀‘여긴 묘지이니 들어가지 마십시요’
아마도 수목장을 한 모양이다.
집 마당에 묘지가 특이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밭고개(나전고개) 사거리로 내려서니 저 멀리 회장님의 모습이 보인다.
나밭고개에서 가야CC까지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띠지도 없는 길을 느낌으로 가려 하니 자꾸 헤맨다.
네비도 더 이상 길안내를 거부하고 갈 길은 묘연하고
차라리 가야CC까지 택시를 타는 건 어떠냔 내 의견을 회장님께서 흔쾌히 받아주신다.
택시를 잡는 것도 불가능, 콜도 거부, 회장님께서 저 아래 누군가를 붙잡으시더니 손짓하신다.
우리를 가야CC까지 픽업해 주신다는 맘씨 좋게 생기신 트럭 주인, 시골인심이라 후한가 보다.
짐칸에 타신 부교수님과 박 사장님 모습이 어째 영 불쌍해 보인다면서 박회장님 짓궂게 그 현장을 담아내신다.
대원들 다들 순진했다.
시골의 맘씨 좋은 아저씨가 세상은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설을 풀기에 봉사하시는 줄 알았더니 잠깐의 거리에 2만원을 달란다.
밥이랑 술 사먹게. 참!! 어린아이들 마냥 좋아라 했었는데……..
가야CC에 정문에서 직원에게 길을 물으니 답답한 소리만 한다.
자기도 길은 모르는데 골프장을 경유하는 건 안 된단다.
정맥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항의를 많이 한단다.
정맥을 끊어 놓고 이정표도 하나 없이 가는 길을 봉쇄했으니
골프장을 이전하던지 골프장 길을 열어주던지.
맞는 말 아닌가.
띠지도 이정표도 없는 길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영혼들, 지쳐간다.
각자의 육감을 테스트하며 여길까 저길까 분분하다가
회장님의 결단으로 골프장 뒷산으로 오른다.
야산인지 길도 없어 거지같은 코스를 한참을 오르다 보니 가야골프장 안이다.
전체적인 분위기 탓인지 이곳 역시 젊잖다.
골프장 맞은편 산허리가 신어산이라 짐작하며 산을 보며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작은 연못은 맹꽁이들 수다로 들썩인다.
골프장을 끼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정맥 길로 들어선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볼 수 없던 막막한 길을 걷다 만난
신어산 이정표에 환호성이 터진다.
내리쬐는 태양은 지친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신어산 가는 길은 한없이 멀기만 하다.
민폐가 된대도 어쩔 수가 없다.
주저앉는다.
가까스로 올라온 능선에서 바라다 본 가야CC 저 모습을 무어라 해석해야 할지.
신어산 서봉에 오르니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하게 터진 조망이
좀 전의 힘겨움을 잊게 한다.
출렁이며 봄을 부추기는 다리 위엔 만개한 벚꽃이 상춘객들을 희롱한다.
흩날리는 벚꽃 이파리들이 화사하다.
신어산 정상에 오르니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고 드넓은 김해평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어산의 유래는 회장님의 산행기로 대신한다.
산불 감시초소 문짝에 쓰여 있는 글귀에 웃음 폭발이다.
‘화장실이 아닙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실례를 한 모양이다.
신어산 동봉에 이르니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는 나그네에게 회장님 이거 저거 물어보신다.
그 나그네 저 아래 신어산장에 가면 음식을 아주 맛있게 하는데 닭백숙이 기가 막히단다.
회장님 장 선생님께 전화해 닭백숙 두 마리를 시켜놓으라 이르신다.
오늘 산행 길의 마지막 절경이다.
급해서 후다닥 달려간 대원들이 미처 못보고 지나간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참 많이도 헤매고 인내를 요구했던 산행 길은 끝날 무렵엔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릴 다독여주고 부드러운 바람으로 토닥여 줬다.
어느새 내려선 생명고개엔 봄 햇살이 감실거리며 우리의 수고를 안아준다.
장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신어 산장에서 먹을 닭백숙을 상상하며 허기진 배를 달래는데
에고 식당이 아니고 펜션이란다.
대원들 급 실망이다.
회장님께서 경치가 좋으니 펜션에 와서 좀 쉬었다 밥 먹으러 가자신다.
산자락 아래 그림처럼 서 있는 산장엔 허기가 진 배를 고문하는 삼겹살 냄새가 진동한다.
이정일회장님과 통성명을 하신 쥔장 어르신은 회장님의 형님뻘이란다.
담에 놀러 오면 여기서 숙박을 하라시며 살갑게 배웅을 해 주신다.
장선생님표 커피로 피곤함을 달래며 올라오는 길에 봐두셨다는 농원으로 향한다.
넓직한 마당엔 산을 배경 삼아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서있는
신라농원(상동면 묵방리 213-1. ☎ 055-323-6842)에 들어서니
마치 시골 대청마루에 올라선 것처럼 시원하고 넓다란 실내모습이
꼭 시골집에 놀러 온 기분이다.
싱싱한 야채들로 막 버무려 낸 겉절이와 정갈한 반찬들,
담백한 생오리 구이가 미각을 돋운다.
정신없이 위장으로 밀어 넣고 나니 배도 부르고 맥주 한 모금에 취기도 오른다.
다시 놀러오라시는 쥔장과 살뜰한 인사를 나눈다.
꼭 다시 들러달란다
모처럼 문화 탐방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김수로 왕릉을 찾는다.
도시 한가운데 문화유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느껴진다.
왕릉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역시 이정일 회장님의 산행기로 대신한다.
산행시간을 예측하지 못한 관계로 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김해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 가는 차표는 이미 매진이 되어
부랴부랴 창원고속버스터미널로 달린다.
번개처럼 뛰어 매표소에 가니 다행히도 좀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차표가 남아있다.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이 지역의 별미 돼지국밥을 먹는다.
배도 부르고 별생각 없이 먹었는데도 맛이 좋다.
고단한 몸은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숙면 속으로 빠져드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는 영혼들을 깨우는 소리,
세월호의 안타까운 뉴스가 보도 되고 있었다.
간절한 기도밖에 할게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임형주님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 이 노래를 바칩니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1989년 영국군의 한 병사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 한 통과 같이 있었던 ‘시’ 라고 하네요. 그 병사의 아버지가 장례식 때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시를 낭독했는데 그것이 bbc를 통해서 방송이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시는 영화감독인 하워드 혹스의 장례식에서도 낭독되었고,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였던 “9.11테러” 추모식 때도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녀가 낭독하면서 큰 울림을 주기도 했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