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한지 열흘 정도 지나고 보니 도통 어딜 다녀왔는지 기억의 절반은 지워진 듯 하다. 사진과 회장님 산행기를 참고로 써보기로 한다. 아침식사 점심식사 모두 준비해 오겠다는 구미호 언니의 전화에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 길에 나선다. 강남 역에서 창원 행 버스를 탄다.
새벽임에도 미세먼지가 운무처럼 뒤덮여 시야가 흐릿하다. 선산 휴게소에 들러 구미호 언니가 준비해온 바나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단잠에 취해 달리다 보니 창원역이다. 장기사님 만나 지난번 하산지점인 오곡재를 향해 달린다.
구비구비 돌고 돌아 오르는 길, 정신이 잠시 흩어지면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함과 마치 수묵화를 펼쳐 놓은듯한 비경에 비명 같은 탄성이 쏟아진다. 지난번 눈길에 진퇴양난 눈물이 났었다는 장기사님 말 완전 실감난다.
오곡재에 이르니 햇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족발에 소주한잔 걸치며 세월 가는 줄 모르는 나그네들이 여유롭다. 차 안에서는 봄인 듯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시더니 옷깃을 여밀 정도로 바람이 차다. 여항산이란 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허리가 아파 치료 중이라는 박총무님과 구미호 언니가 염려스럽다.
작은 체구에 바리바리 짊어진 배낭이 걱정스러워 짐 좀 덜어드리려 해도 극구 사양하는 언니, 행여나 다칠까 싶어 무건 발걸음 뒤를 따라 걷는다. 아련한 햇살 속으로 빠져드는가 싶더니 못내 아쉬워 보내지 못하고 서성이는 겨울의 흔적들이 곳곳에 흰 눈으로 남아 있다. 평범한 듯 착한 길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수직으로 펼쳐진 계단은 절로 한숨을 토하게 한다. 대체 하늘은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런지~이젠 정말 더 이상 못 오르겠다 싶을 즈음 능선이 보인다.
초반부터 선두를 치고 달리시던 박회장님께서 산행기에 이 말은 꼭 쓰라신다.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가 나온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을 즈음이면 능선이 보이더라” 명언이다^^
오늘은 산행 내내 조망이 좋아서 지루하지 않을 거란 회장님 말씀처럼 능선에 올라서자 시원하고 담대하게 펼쳐진 산자락이 속세에 찌들어 뭉쳐 있던 마음을 헤쳐 놓는다. 배능재를 지나니 헬기장이 보인다. 여유 있게 경관을 즐기며 걷는 길 사이로 봄 앓이를 하는 나무들과 목청 돋워 노래하는 새들, 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 두 팔을 치켜들고 기이한 탄성을 지르는 남정네들이 서 있는 저곳, 하늘아래 수천 길 낭떠러지 사이로 우뚝 서있는 바위 하나.
여항산이란다. 해발 770m! 잠시 한눈 팔면 황천길로 데려갈 듯 깍아지른 듯 날카롭게 서 있는 바위를 끌어안고 기다시피 해서 도니
저 아래 펼쳐진 속세의 그늘이 아주 작은 점으로 다가온다. 햇살은 맑아도 미세먼지 탓에 시원하게 조망되지 않는 경관이 옥에 티라고나 할까.
침묵으로 즐기는 경이로운 풍경은 잠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멀미가 난다. 갈 길이 바빠 눈으로 마음으로 풍경을 담고 여항산을
뒤로 한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산양 배설물이 널려있고 능선으로 내려서자 넓다랗게 펼쳐진 평상이 보인다. 깊은 산중에 평상이라~~간식으로 배를 채워주는데도 점심 달라 보채는 위장을 달래며 구미호 언니 표 도시락을 펼친다. 갖은 정성으로 만든 찰밥과 나물들에 포만감과 노근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커피, 야채, 과일,빵 골고루 나오는 요술 배낭, 만일에 언니가 빠지면 이 백성들 어이할꼬. 늘 고맙고 놀라울 뿐이다.